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009
한자 政治
영어공식명칭 Politics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철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2년 07월 01일 -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성격 통치·자치 행위

[정의]

세종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민주적 방식의 권력 획득과 그 권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통치·자치 행위.

[개설]

정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기 때문에 의미를 특정할 수 없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정치는 ‘유권자의 투표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과 그 권력이 행사되는 일체의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48년 실시된 제헌국회의원 선거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치적으로 수많은 격동과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 그 흐름 속에서 주권자의 정치적 의사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각종 선거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종시 지역의 시대별 정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세종특별자치시는 2012년 7월 1일 출범 이래 정치적으로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정부부처와 국책기관 이전에 따른 세종특별자치시의 정치적 위상에 점차 비중이 실리고 있고, 출범 초기 10만여 명에 불과하던 인구도 2019년 현재 32만 명을 넘어서는 등 예전과는 전혀 다른 정치 환경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세종 지역의 역대 대통령·국회의원·지방 선거 결과를 출범 전후로 나누어 정치 흐름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대통령 선거]

제1공화국 시절 대통령 선거에 대한 연기군의 정치적 성향은 여촌야도[농촌은 여당 지지, 도시는 야당 지지] 투표 성향을 보였다. 그러나 제3공화국에서 실시된 제5, 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야권 후보를 지지하였다.

이후 8~12대는 간접선거로 지역의 정치의사가 반영되지 않았으며, 13~16대 대통령 선거는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보수야당에 힘을 실어 주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충청권 신행정 수도건설’을 공약한 진보정당 후보를 연기군 유권자의 약 58%가 지지한 반면에 지역 민심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 보수 정당의 지지 기반은 이때부터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제1대~제17대 대통령 선거〉

제1대 대통령 선거는 제헌의회에서 선출하였기 때문에 주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

제2대 대통령 선거에서 연기군 유권자들은 이승만에게 2만 8,274표[84.75%],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2만 699표[76.35%]를 지지하였다.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은 단독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연기군에서는 3만 9,225표[100%]를 득하였다. 그러나 부정선거에 분노한 국민의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은 무너지고 말았다.

제5대~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연기군 개표 결과는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이 2만 2,916표[57.78%]로 박정희의 1만 3,490표[34.01%]를 크게 앞질렀고,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이 2만 1,252표[51.01%]로 박정희의 1만 7,161표[41.19%]보다 약 10% 많은 득표를 하였다.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박정희 2만 2,417표[56.12%], 김대중 1만 6,735표[41.9%]로 나타났다.

제8대~제12대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대통령 선거인단 등이 대통령을 선출하였기 때문에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없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충청권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이 연기군에서 득표 1위로 2만 2,467표[43.78%]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결과는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후에도 연기군 민심은 김종필의 정치 행보에 힘을 실어 주었다.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등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 김영삼이 연기군에서 득표 1위[1만 7,532표, 38.9%]를 하였고,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종필과 후보 단일화에 성공한 김대중이 연기군에서 1위 득표[1만 9,889표, 45.18%]를 하였다.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무현이 ‘충청권 신행정수도 공약’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연기군에서 2만 3,241표[57.99%]를 얻었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충청권에 연고가 있는 무소속 이회창이 연기군에서 1위로 1만 5,084표[36.58%]를 받았으나 낙선하고 이명박이 당선되었다.

〈세종특별자치시 : 제18대~제19대 대통령 선거〉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한 해인 2012년 12월 19일 실시되었다. 제18대 선거에서는 박근혜가 ‘세종시 원안건설 플러스알파’를 공약하여 세종특별자치시에서 3만 3,587표[51.91%]를 얻었다.

2017년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에 따라 실시된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문재인이 세종특별자치시에서 7만 7,767표[51.08%]를 얻어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선거]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통령 선거와 다소 다른 양상을 보였다. 대체로 보수, 진보를 떠나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에 힘을 실어 주는 ‘여촌야도’의 투표 성향으로 나타나다가 1988년 김종필이 정치를 재개하고부터는 지역 기반의 정당 후보를 지지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2008년에 실시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직전에 실시된 2012년 4월 제19대 총선에서는 지지 기반이 탄탄하다고 보고 있던 심대평이 낙선하고 지역 연고가 빈약하다는 이해찬이 당선되면서 지역정치 판도에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연기군 : 제1대~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우리 국민이 처음으로 주권행사를 한 것은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제헌국회의원 선거라 할 수 있다. 임기 2년의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의 진헌식이 연기군의 선량(選良)[뛰어난 인물을 뽑는다는 뜻으로, 국회 의원을 달리 이르는 말]으로 당선되었다.

제2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의 이긍종이 당선되었으나 1951년 1월 사망함에 따라 그해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의 이범승이 당선되었다. 제3대[1954년]와 제4대[1958년] 총선에서는 자유당의 유지원이 당선되었으며, 제5대[1960년] 총선에서는 민주당의 성태경이 당선되었으나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국회가 해산됨에 따라 임기 1년 만에 물러났다. 제6대[1963년]와 제7대[1967년]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김용태가 당선되었고, 제8대[1971년]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의 김제원이 당선되었으나 1972년 위헌적인 10월 유신 선포에 따라 국회가 해산됨으로써 임기를 채우지 못하였다.

이때까지는 국회의원 소선거구제가 실시되어 연기군 단독으로 국회의원을 선출하였다. 그러나 제9대부터 제12대까지 대덕·연기·금산을 1개 선거구로 하는 중선거구제로 국회의원을 선출하게 되었다. 제9대[1973년]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김제원과 신민당 유진산이 당선되어 6년의 임기를 마쳤다. 제10대[1978년]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이준섭과 신민당 유한열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신군부의 10·26사태에 따라 임기를 2년도 채우지 못한 1980년 10월 27일 국회가 강제 해산되었다.

제11대[1981년]와 제12대[1985년]에는 민주정의당의 천영성과 민주한국당의 유한열이 당선되었다. 제13대[1988년]에는 다시 소선거구제가 실시되면서 선거구가 대덕·연기로 바뀌었고, 신민주공화당의 이인구가 당선되었다. 제14대와 제15대는 연기군 단독으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가 실시되면서 제14대[199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통일국민당 박희부, 제15대[199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민주연합 김고성이 각각 당선되었다. 제16대부터 제18대까지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선거구가 공주·연기로 바뀌었다.

제16대[2000년] 선거에서는 자유민주연합 정진석이 당선되었고, 제17대[2004년]에서는 열린민주당 오시덕이 당선되었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하여 2005년 보궐선거를 실시한 결과 자유민주연합 정진석이 당선되었다. 제18대[2008년]에서는 자유선진당 심대평이 당선되었다.

〈세종특별자치시 : 제19대~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제19대[2012년 4월 11일] 선거에서는 지역 지지 기반이 탄탄하다는 평을 받고 있던 심대평이 낙선하고 야당의 이해찬이 당선되었다. 이는 당시 이명박 정권의 세종특별자치시 수정안에 대하여 지역 국회의원으로서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였다는 민심의 평가라 할 수 있다. 이때부터 전통적으로 보수정당 지지의 지역 민심에 변화가 일기 시작하면서 이해찬은 제20대[2016년] 총선에서도 당선되었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1995년부터 실시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연기군민은 대체로 지역 기반 정당인 자유민주연합, 국민중심당, 자유선진당 후보를 선출하였다. 그 흐름의 여파로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장 선거에서도 자유선진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2014년 선거부터 신·구 도심 간 인구 역전 현상에 따라 지지 분포가 달라졌다. 인구가 획기적으로 증가한 신도심 지역에서는 진보정당 후보가 선풍적인 지지를 받은 반면에 보수정당 후보는 부진을 면치 못하는 등 지역의 정치 환경에 큰 변화가 일었다.

〈연기군수〉

제1대, 제2대 민선군수에는 자유민주연합 홍순규가 당선되었다. 제3대 민선군수에는 한나라당의 이기봉이 당선되었으며, 제4대 선거에서는 이기봉이 지역에 지지 기반을 둔 국민중심당으로 당적을 변경하고 출마하여 재선되었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으로 임기 중 낙마하였다. 보궐선거에서 국민중심당 최준섭이 당선되었지만 최준섭 역시 선거법 위반으로 임기 중 낙마하였고, 다시 실시된 재보궐선거에서 자유선진당 유한식이 당선되어 제4대 민선군수 임기를 마무리하였다. 이어 제5대 민선군수 선거에서 유한식이 재선되었으나 임기 2년 만에 세종특별자치시장 출마를 위하여 사임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장〉

제1대 세종특별자치시장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유한식이 당선되어 임기 2년의 초대 세종특별자치시장을 지냈다. 제2대, 제3대 세종특별자치시장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춘희가 당선되었다.

〈2019년 현재〉

2019년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의 정치 판도는 국회의원, 시장을 비롯하여 시의원 18명 중 17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채워져 있는 등 여타 정당은 정치적 입지가 대폭 축소된 상황이다.

[참고문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http://www.ne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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