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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114
한자 大谷里
영어공식명칭 Daegok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대곡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지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대곡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대곡리에서 충청남도 연기군 소정면 대곡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12년 07월 01일 - 충청남도 연기군 소정면 대곡리에서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대곡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가구수 348가구
인구 653명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에 속한 법정리.

[명칭 유래]

대곡리(大谷里)는 1914년에 전의군 북면의 대사동과 맹곡리의 이름을 따서 대곡라는 명칭으로 연기군 전의면에 속하여 있다가 소정면이 신설되면서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궁말·역말·한적골 등이 있다. 궁말은 역말 서쪽에 있는 마을로 앞에 있는 들에 궁을 지을 만한 좋은 터가 있었다 하여 궁말 또는 궁리라 불린다. 역말은 맹골 북쪽 큰 길가에 있는 마을로 조선시대에 김제역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절골은 대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고등이재 밑이 되는데, 예전에 큰 절이 있었다 하여 한절골이나 한적골 또는 대사동이라 불린다.

[형성 및 변천]

대곡리는 원래 전의군 북면 역리 및 맹곡리와 천안군 풍세면 대사동, 궁리, 소시리 일부, 대야동을 합쳐 1914년에 연기군 전의면에 편입되었고, 1995년에 소정면이 개설될 때 편입되었다.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산 흔적이 있는 지역으로 신석기시대의 돌칼과 돌화살촉이 출토되었다. 산의 모양으로 보아 혈거부락(穴居部落)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한다. 조선시대에는 역리(驛里)부락으로 교통·통신·숙박시설 역원인 김제역(金提驛)이 있었다.

[자연환경]

대곡리소정면 북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고등리, 서쪽으로는 소정리와 인접하여 있다. 대곡리 주위에는 삼준산과 연암산이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100~300m의 낮고 평탄한 산지를 이루고 있다. 대곡리를 흐르는 작은 하천인 대곡천과 황골천이 곡교천으로 흘러들어 합류한다.

[현황]

2020년 8월 기준 총 348가구에 65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곡리에는 쌀과 고추 등의 시설 채소의 재배가 활발하다. 충청남도 연기군 소정면에 속하여 있다가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으로 편입되었다. 한절골 또는 대사동으로 불리는 마을에는 수백 년간 마을을 지켜온 대곡리 장승이 있다. 대곡리 장승은 전국에서도 매우 유명하다. 2002년에는 서울 경복궁 내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앞뜰에 장승을 세우고 장승제가 시연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09.25 현행화 인구수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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