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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260
한자 芙蓉-
영어공식명칭 Buyongnaru
이칭/별칭 새우개나루,조우개나루,부강나루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시대 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강창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비정 지역 부용나루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부용리 지도보기
성격 나루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부용리부강면 부강리를 이어 주던 금강의 나루.

[명칭 유래]

부용나루의 명칭은 부용산(芙蓉山)과 부용강(芙蓉江)에서 유래하였다.

[형성 및 변천]

부용나루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부용리(芙蓉里)에서 부강면 부강리[옛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 부강리]를 잇던 금강의 나루였다. 연꽃이 물에 뜬 생김새를 한 부용산 아래의 마을인 부용리금강 건너 부강리를 잇던 나루는 새오개나루, 용댕이나루, 검소나루[검시나루, 선말나루] 등 여러 나루가 있었다. 새오개나루는 금남면 부용1리의 속칭인 ‘초오개’ 또는 ‘새오개’ 마을과 부강면 금호리의 속칭인 ‘선말’을 잇는 나루였다. 용댕이나루는 부용2리에 있던 나루이고, 검소나루는 검담서원(黔潭書院)이 있던 서원마을을 줄여서 부르던 ‘선말’에 있던 나루이다. 부용나루 건너편 부강리에는 부강나루, 즉 부강포구가 있었다.

한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후 문의면 삼도면 소속으로 부강리가 기록되어 있다. 이전의 삼도면 소속 마을에 부강리라는 지명은 없었다. 1900년 이전의 대홍수로 공주목 명탄면 소속의 부강포구[현 금남면 부용리]가 부용산 맞은편 구들기[현 부강면 부강리] 앞으로 옮겨지면서 부강포구를 따라 부강리로 지명이 명명되었고, 옛 부강리부용리가 되었다.

부용나루부강나루를 잇던 곳은 홍수가 발생하면 나루터가 없어지고 물길이 바뀌거나 작은 샛강이나 모래사장이 생기는 등 지형이 잘 변하고, 갈수기(渴水期)[한 해 동안에 강물이 가장 적은 시기]에는 유량이 메말라 나룻배를 운행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모래톱에서 다시 샛강을 건너 나룻배를 갈아타고 건너는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부용나루부강나루를 잇던 뱃길과 나루터 위치가 일정치 않았고 지명이 가리키는 위치도 포구의 이동과 함께 변화하였기 때문에 나루터 지명도 혼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관련 기록]

조선 후기 고지도 『해동지도(문의현)』에는 검담서원 앞을 흐르는 금강을 부용강(芙蓉江)으로 표기하고 있다. 부용강은 후에 부강(芙江)으로 부르거나 표기되었다. 부용은 산과 강의 이름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부용산은 해발 222m 정도에 불과한 낮은 산이지만 강과 접한 곳에는 암벽이 발달하여 정자를 만든 일도 드물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서해에서 잡은 새우젓과 소금배가 부용강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부강리(芙江里)는 조선시대 읍지 『여지도서』 공주목 명탄면에 기록되어 있다. 1789년의 『호구총수』 공주목 명탄면에는 부강리와 함께 하부강(下芙江)이라는 동리가 추가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 포구가 있었다가 1946년 병술년 홍수 때 마을 전체가 사라진 부용리 ‘큰말’ 일대로 추론된다. 공주목 명탄면 부강리는 1896년 광무개혁으로 지방제도가 개혁될 때 부용리로 변경된다.

[현황]

부용나루부강나루를 잇던 뱃길에는 1980년대에 건설된 일반도로인 금병로가 개설되어 있다. 2016년 기준 선말나루터에는 조선시대 동춘당 송준길(宋浚吉)이 세운 보만정(保晩亭)과 함께 나루터 흔적과 작은 나룻배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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