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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332
한자 鐵器時代
영어공식명칭 Iron Age
이칭/별칭 삼한시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선사/철기
집필자 이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기원전 300년경~서기 300년경

[정의]

세종 지역에서 철을 이용하여 도구로 사용하게 된 때부터 역사시대 이전까지의 시대.

[개설]

일반적으로 철기시대(鐵器時代)는 철(鐵)을 도구의 주 재료로 사용한 시대이며, 철기는 청동기를 잇는 새로운 금속기로 인류가 도시나 국가를 형성한 문명단계에 들어서면서 등장하였다. 철기 사용은 인간의 생활문화 양상을 여러모로 변화시켰다. 특히 철제 농공구의 출현으로 농업이 크게 발달하면서 농업 생산력이 향상되었다. 잉여생산물 증대로 철기시대는 철을 도구의 주 재료로 사용한 시대였다. 철기는 청동기를 잇는 새로운 금속기로, 인류가 도시나 국가를 형성한 문명단계에 들어서며 등장하였다.

철기 사용은 인간의 생활문화 양상을 여러모로 변화시켰다. 특히 철제 농공구의 출현으로 농업이 크게 발달하면서 농업 생산력이 향상되었다. 잉여생산물이 증대하면서 경제사회가 발전하여 더 큰 정치체가 출현하였다. 철기시대는 생산력이 일정한 정도로 발전한 모습을 보인다. 철기 사용에 따른 생산력의 발전을 바탕으로 중앙 집권화가 이루어지는 고대국가 단계로 들어가는 과정에 있었음을 살필 수 있다.

[철기시대의 편년]

우리나라 고고학에서는 기원전 300년경부터 삼국이 정립된 서기 300년경까지를 말하며, 삼한시대(三韓時代)로 지칭하기도 한다. 이 시기는 크게 두 단계를 거쳐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첫째 기원전 300년경부터 기원전 100년경까지 연(燕)나라의 영향으로 주조철기가 보급되는 단계를 초기 철기시대라 한다. 한반도 북부지역에 유입된 철기문화의 여파는 중부지역을 거쳐 서남부 지역에까지 파급되었다.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의 합송리 유적과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의 소소리 유적을 비롯하여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의 신동리 유적, 전라북도 완주군의 갈동·신풍유적, 전라북도 장수군 천천면의 남양리 유적 등지에서 주조철기가 청동기류와 함께 다수 발견되고 있다. 초기 철기시대에는 세형동검(細形銅劍)을 표지로 한 청동제 무기와 덧띠토기[粘土帶土器] 등이 사용되었다.

다음은 기원후 300년경까지 한군현(漢郡縣)의 영향으로 단조철기가 대량 보급되는 단계이며,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로 구분하고 있다. 이 시기부터 철기는 우리나라 전역으로 급속히 전파되었다. 즉 도끼·가래·낫 등 철제 농경구와 단검·창·꺽창을 비롯한 무기류(武器類)가 전국적으로 생산·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철기시대의 문화상]

철기시대 한반도의 문화 양상은 북부·중부·남부 등 지역별로 다소 차이를 보인다. 즉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는 고조선과 위만조선(衛滿朝鮮)에 이어 고구려가 등장하였고, 남부 지역에서는 삼한(三韓)이 자리 잡던 시기이다. 서울 지역, 경주 지역, 김해 지역에서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독자적인 중심 세력이 형성되면서 각각 백제·신라·가야 등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세종특별자치시가 위치한 곳은 중부지역(中部地域)에 해당하는 곳이다. 중부지역에서 확인되는 주거지는 여(呂)자형 주거지, 철(凸)자형 주거지, 원형주거지이다. 출토 유물로는 경질민무늬토기[硬質無文土器], 두드림무늬토기[打捺文土器], 회색토기 등 토기류와 다수의 철기류가 있다. 대표적인 무덤으로는 움무덤[土壙墓], 독무덤[甕棺墓], 돌무지무덤[積石墓], 도랑움무덤[周溝土壙墓] 등이 있다. 이밖에 철기 생산시설이 조사되기도 하였으며, 중부지역의 여러 유적에서 낙랑계 토기가 출토되고 있어 낙랑과의 교류가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철기시대 유적]

세종특별자치시의 철기시대 유적은 크게 초기철기시대와 원삼국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초기철기시대 유적이 조사된 사례는 매우 적은 편이지만 원삼국시대 이래 백제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취락(聚落)이 존재한 것으로 판단된다.

초기철기시대 유적으로는 토광묘, 주거지, 수혈유구가 있다. 연기 장재리 유적, 합강리 유적, 대평리 유적에서 조사된 예가 대표적이다. 장재리 유적에서는 바닥에 목관(木棺)이 안치된 8기의 토광묘가 확인되었다. 목관은 통나무관을 사용한 것과 상자형의 결구식으로 구분된다. 점토대토기옹·흑도장경호 등 토기류(土器類)와 함께 세형동검(細形銅劍)[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청동제 검], 동부(銅斧)[청동제 도끼], 동착(銅鑿)[청동제 끌], 동사(銅鉈)[청동제 끌의 일종] 등 청동유물(靑銅遺物)이 함께 출토되었다. 합강리 유적에서는 주거지가 조사되었으나 주거지는 벽면 일부가 없어져서 정확한 평면 형태를 알 수 없다. 다만 출토 유물로 초기철기시대를 대표하는 두형토기와 점토대토기 조각이 발견되었다. 대평리 유적에서는 수혈유구가 확인되었다. 대각편(臺脚片)[굽다리조각]과 조합식우각형파수편(組合式牛角形把手片)[조합식쇠뿔잡이조각] 등이 출토되어 세종 지역 일대의 초기철기시대 문화상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원삼국시대유적은 대개 백제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연결된 형태를 보이며, 취락유적·분묘유적·생산유적·기타유적 등을 아우르는 지역 정치체의 특징 파악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취락유적은 응암리 유적, 용호리 용산유적, 합강리 유적, 월산리 황골유적, 3-1생활권의 대평리 유적, 석삼리 유적 등이 있다. 분묘유적은 주구토광묘, 토광묘, 옹관묘 등으로 다양하다.

[의의와 평가]

우리나라의 철기문화는 중국 대륙으로부터 유입되어 한반도 북쪽에서 남쪽으로 전파되었지만 토착적인 청동기문화와 융합되어 새롭게 생성되고 발전되어 나간 역사적 특수성(特殊性)이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에서는 최근 금남면 장재리 유적을 비롯하여 청주 오송유적에서도 철기시대유적이 조사되는 등 관련 유적의 발굴 조사 내용이 증가하면서 철기시대 연구에 많은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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