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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348
한자 全義縣
영어공식명칭 Jeonuihyun
이칭/별칭 구지현,금지현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개항기
집필자 안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940년(태조 23)연표보기 - 금지현에서 전의현으로 개칭
폐지 시기/일시 1914년 - 전의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전의를 연기군에 병합
개정 시기/일시 1414년(태종 14) - 전의현, 전의현과 연기현을 합쳐서 전기라 함
개정 시기/일시 1416년(태종 16) - 전의현, 연기현과 전의현을 분리하여 각각 현감을 둠
개정 시기/일시 1895년(고종 32) - 전의현, 공주부의 전의군으로 개편
개정 시기/일시 1896년(고종 33) - 전의현, 충청남도 전의군이 됨
성격 고지명

[정의]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일대의 옛 행정 구역.

[개설]

전의현(全義縣)은 조선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 때 제정되어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현(縣)을 군(郡)으로 일괄 개칭할 때 전의군으로 개칭되어 승격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연기군에 병합되어 일부 지역이 연기군 전의면으로 남아 있었다.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흡수 폐지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1413년(태종 13)의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혁, 즉 군현제 개혁은 고려 후기 이래 무질서하게 승격된 지방 행정구역의 읍격(邑格)을 각 군현의 호구(戶口) 및 전결수(田結數)에 따라 합리적으로 재조정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대몽전쟁(對蒙戰爭) 이후 감무제(監務制) 발달과 민중 성장을 발전적으로 수렴하여 속현이나 향·소·부곡 등 차별 대우를 받고 있던 행정 단위 문제를 해소하고, 전국적으로 8도관찰사제(八道觀察使制)에 입각한 일원적인 군현 조직을 창출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지방 통치 체계 측면에서 농업 생산에 바탕을 둔 유교적인 중앙집권 국가의 하부적 기반을 완비해 나가기 위한 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여도비지(輿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호서읍지(湖西邑誌)』, 『대전회통(大典會通)』 등 각종 지리지와 읍지 등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충청도 충주목 조에는 “본래 백제의 구지현(仇知縣)인데, 신라에서 금지현(金池縣)으로 고쳐 대록군(大麓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에서 전의현으로 고쳐 청주(淸州) 임내에 붙였다. 본조 태조(太祖) 을해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고, 태종(太宗) 14년 갑오에 연기(燕岐)에 합쳐 전기(全岐)로 고쳤다가, 병신에 다시 갈라서 전의 현감(全義縣監)으로 하였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청주에 이르기 13리, 서쪽으로 천안(天安)에 이르기 7리, 남쪽으로 연기에 이르기 11리, 북쪽으로 목천(木川)에 이르기 6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외 호수, 토성, 기후 등의 내용이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 연기현(燕歧縣) 조에는 건치 연혁으로 “본래 백제의 구지현(仇知縣)이었는데, 신라에서 금지(金池)[지(池) 자는 지(地) 자로 쓴 데도 있다.]로 고쳐서 대록군(大麓郡)의 속현으로 만들었던 것을 고려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청주에 예속시켰다. 본조에서는 태조(太祖) 4년에 감무(監務)를 두었고, 태종(太宗) 13년에 예(例)에 따라 현감(縣監)으로 하였으며, 다음 해에 연기현을 합하여 전기현(全岐縣)으로 하였다가 16년에 각각 환원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건치 연혁을 비롯하여 관원, 군명, 성씨, 픙속, 산천, 토산, 누정, 학교, 역원, 불우, 사묘, 고적, 명환, 인물, 제영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내용]

전의현은 백제 때 구지현(仇知縣)이었으나 당나라가 백제를 친 다음 구지(久遲)로 고치고 동명주(東明州)의 영현으로 삼았다. 통일신라 시대 금지(金池)로 고치고, 대록군(大麓郡)[현 천안시 목천면]의 영현으로 삼았다. 전동면운주산성(雲住山城)은 신라 때 전주부가 있었던 곳이며, 경덕왕 때 부를 폐하고 대록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금지현전의현으로 고치고 뒤에 청주에 소속시켰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동쪽으로 청주(淸州) 경계까지 18리, 남쪽으로 연기현(燕岐縣) 경계까지 18리, 서쪽으로 천안군(天安郡) 경계까지 11리, 북쪽으로 목천현(木川縣) 경계까지 12리, 서울과의 거리는 2백 43리로 기록하고 있다.

[변천]

940년(태조 23)에 금지현전의현으로 고치고 이후 청주에 소속시켰다. 1395년(태조 4) 전의현에 처음으로 감무가 임명되었다. 1414년(태종 14) 전의현연기현을 합쳐서 전기(全岐)라 하였고, 1416년(태종 16) 다시 연기현전의현을 분리하여 각각 현감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공주부의 전의군으로 개편되었으며, 1896년(고종 33)에는 충청남도 전의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전의는 연기군에 병합되었다.

[의의와 평가]

전의현의 변천 과정과 행정구역 변동을 통하여 세종특별자치시 역사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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