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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청 이전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371
한자 忠南道廳移轉說
이칭/별칭 충청남도 도청 이전설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윤철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5년 10월 12일 - 매일신보가 충남도청 이전지에 조치원이 최적지라는 논조로 보도
발단 시기/일시 1910년경 - 도청을 교통이 불편한 공주에서 철도역이 있는 곳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
전개 시기/일시 1929년연표보기 - 충남도청 이전 논의 본격화
전개 시기/일시 1930년 1월 -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을 공식 발표
전개 시기/일시 1931년 01월 13일 - 충남도청 입지를 대전으로 기정사실화
전개 시기/일시 1932년 10월 01일연표보기 - 충남도청 청사 이전식 대전에서 거행
성격 여론

[정의]

일제강점기에 충청남도 도청을 조치원읍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

[역사적 배경]

1905년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각 지방의 교통체계가 철도역 중심으로 급격하게 재편되었다. 조선시대 충청감영이 있던 공주는 1896년 충청남도로 분리된 후 도청소재지가 되었으나 경부선 철도에서 벗어난 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교통이 불편하였다. 따라서 철도역이 있는 곳으로 도청을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1910년 경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경과]

조선총독부는 한반도의 원활한 식민 통제를 위하여 각 도청소재지를 교통과 통신이 원활한 지역으로 재편할 계획이었다. 이러한 계획에 충청남도가 포함되었다. 충남도청 소재지인 공주와 충북도청 소재지인 청주가 모두 경부선 철도에서 벗어나 있는 관계로 당초 일제는 공주와 청주 가운데에 위치한 조치원을 활용할 계획이었다. 충남도청 계획의 핵심은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를 충청도로 통합한 후 충청권 중심에 위치한 조치원에 충청도청을 설치하는 것이었으며, 극비리에 추진하여 거의 확정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공주와 청주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닥쳐 충청도청 설치 계획은 포기되었다. 이후 충북도청은 청주에 존치하되 충남도청은 철도역이 있는 곳으로 이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조선총독부의 구상에 따라 대전, 천안, 조치원이 도청 유치를 위한 각축전을 벌였다. 1925년 10월 12일자 매일신보는 충남도청 이전지에 조치원이 최적지라는 논조로 보도하였다. 이와 같이 조치원은 충남도청 이전 후보지로 거론되었다.

[결과]

본격적인 도청 이전 논의는 제5대 조선총독 야마나시 한조(山梨半造)가 재임하던 1929년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야마나시 한조 조선총독은 대전 지역 인사들의 도청유치독직사건에 연루되어 물러났다. 야마나시 한조 뒤를 이어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은 1930년 1월 기자회견에서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을 공식 발표했다. 이후 공주, 천안, 조치원이 반발하면서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1931년 1월 13일 충남도청 입지를 대전으로 기정사실화하였다. 신축한 충남도청 청사 이전식은 1932년 10월 1일 대전에서 개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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