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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436
한자 尹慤將軍墓
영어공식명칭 Tomb of General Yoon Gak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 260-10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경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665년 - 윤각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724년 - 윤각 사망
이장 시기/일시 1872년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으로 이장
이장 시기/일시 2013년 - 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으로 이장
문화재 지정 일시 2007년 02월 14일연표보기 - 윤각장군 묘 충청남도 보존 묘지 제4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16년 03월 21일연표보기 - 윤각장군 묘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65호 지정
현 소재지 윤각장군 묘 - 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 260-109 지도보기
원소재재 윤각장군 묘 - 공주 의랑촌
성격 능묘
양식 삼위 합장으로 봉토를 둥글게 한 원부
관련 인물 윤각
소유자 함안윤씨 종중
관리자 윤왕재
문화재 지정 번호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65호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에 있는 조선 후기 윤각의 묘소.

[개설]

충민공 윤각(尹慤)[1665~1724]은 자가 여성(汝誠) 호는 창동(蒼東)이다. 진사 익상(翊商)의 아들이다

1697년에 형 윤원과 함께 공주 요당으로 이거한 후 2년 뒤인 1699년(숙종 25) 33세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고, 수군절도사·함경도병마절도사·삼도수군통제사를 거쳐 총융사가 되는 등 높은 무관직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영조 즉위 후 1725년 3월 신임옥사를 무옥(誣獄)[아무 죄 없는 사람을 죄가 있는 듯이 꾸며 내어 일으킨 옥사]으로 규정한 이른바 을사처분으로 노론 4대 신인 김창집, 이이명, 이건명, 조태채 등과 함께 사후 1년 만에 신원(伸冤)[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 버림]되었다.

그 후 1727년 다시 정권이 소론에 넘어가는 정미환국으로 증직이 철회되었고, 1741년(영조 17)에 신임옥사는 무옥이므로 피화자(被禍者)[화를 당한 사람]를 신원한다는 명이 있어 윤각의 증직이 다시 회복되었다.

다시 40여 년이 지난 1783년(정조 7)에는 윤각에게 충민(忠愍 : 危身奉上曰忠, 佐國逢艱曰愍)이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1784년 정조는 예관을 보내 치제(致祭)[임금이 제물과 제문을 보내어 죽은 신하를 제사 지내던 일]하였다.

그 후 1805년에는 부조묘(不祧廟)[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를 하사받고 1824년에는 마침내 공주 요당서사(蓼塘書社)에 추배되기에 이르렀다.

윤각이 극형으로 별세하자 공주 의당촌에서 임시로 장사를 비내고 정부인 전주이씨도 처음에는 남양주 화접동에서 장사를 지냈다가 1725년(영조 1) 광주김씨가 정려를 받게 되면서 충민공 윤각과 정부인 전주이씨 묘를 옮겨 정부인 광주김씨와 함께 공주 한양동[현재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영곡리]에 3위 합장하였다.

[위치]

윤각장군 묘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 도램마을 20단지 인근 기쁨들 공원의 동산 안쪽에 위치해 있다.

[변천]

윤각의 묘소는 처음 공주 의랑촌에 권장하였고, 부인 광주이씨는 남양주 화접동에 장례하였다가 공주 한양동[옛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영곡리 산 20-1]에 합장하였다.

윤각의 신도비, 묘비, 묘표를 찬한 인물들은 모두 당대의 저명한 문인과 문장가들이었다.

신도비는 도암(陶菴) 이재(李縡), 묘비는 여호(黎湖) 박필주(朴弼周), 묘표는 도곡(陶谷) 이의현(李宜顯), 행장은 민진원(閔鎭遠), 시장은 홍락명(洪樂命)이 각각 찬하였다.

1827년 묘소를 연기군 연동면 합강리로 이장하게 되는데 당시 세 고을의 장정을 동원하여 신도비, 묘비, 묘표, 장군석, 명등석 등 석물을 운반하던 나룻배가 금강을 도하하던 중 전복되어 아쉽게도 모두 수장되었다고 한다.

2007년 충청남도 보존묘지 제4호로 지정되었다가 세종특별자치시의 간선급행버스체계(BRT) 도로 개설로 부득이 현재는 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 260-109의 현 위치에 옮겼고, 후손들이 뜻을 모아 마련한 성금으로 석물을 갖추어 오늘에 이른다.

윤각의 묘는 2016년 3월 21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65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윤각의 묘소는 광주김씨를 부좌(祔左), 전주이씨를 부우(祔右)한 삼위 합장으로 봉토를 둥글게 한 원부의 형태이다.

[금석문]

윤각의 묘소 묘표 전면에는 종서(縱書)로 적혀 있다.

호패형의 석재로, 정면의 중앙에 ‘贈資憲大夫兵曹判書 行嘉善大夫 兵曹參判 諡 忠愍 尹公 諱慤 之墓’라 쓰여 있고 양 옆에는 각각 ‘貞夫人 光州金氏 祔左, 貞夫人 全州李氏 祔右’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윤각의 묘소는 현재 위치로 옮긴 후손들이 뜻을 모아 마련한 성금으로 석물을 갖추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불천위 제사는 윤각의 사당인 충민사에서 지내고 있다.

후손의 전언에 의하면 1872년 이장 과정에서 배가 전복되었을 때 묘에 두른 둘레석 일부도 분실되어 지금은 남은 것으로만 마무리하면서 봉분이 작아졌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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