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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468
한자 全義弓人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금반형길 17[신방리 116-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정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12년 12월 31일연표보기 - 전의 궁인 세종특별자치시 무형문화재 제1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전의 궁인 세종특별자치시 무형문화재 재지정
문화재 지정 번호 세종특별자치시 무형문화재

[정의]

세종 지역에서 우리나라 전통 활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전통 활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장인.

[개설]

우리 민족의 활 만드는 기술은 오래전부터 세계 어느 민족보다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중국에서는 우리 민족이 활을 잘 만들고 잘 쏘는 동쪽의 민족이라는 뜻에서 ‘동이(東夷)’라고 부를 정도로 활 제작에서 뛰어난 기술이 있다고 하였다. 국궁(國弓)은 고구려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삼국시대 때부터 사용되었으며, 조선 전기에는 과거시험의 무과 과목에 궁술이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조총이 수입되어 활은 전쟁용 무기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현재는 서양에서 들어온 양궁(洋弓)과 구별하기 위하여 국궁이라고 하고 있다.

[궁시장 소개]

궁시장(弓矢匠)이란 활과 화살을 만드는 기능과 그 기능을 지닌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활을 만드는 사람을 궁장(弓匠), 화살을 만드는 사람을 시장(矢匠)이라 칭한다. 궁인(弓人)과 시인(矢人)은 『주례(周禮)』에서 유래된 말로, 『맹자(孟子)』에도 등장하며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우리나라 기록에서는 고려시대에 무기를 제조한 군기감에 각궁장(角弓匠)이 소속되어 있어 궁장(弓匠)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다가 조선시대 들어와 궁인과 시인이란 호칭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궁시장은 1971년 9월 13일 김장환을 국가무형문화재 47호로 궁시장으로 지정하여 궁시장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주장응 장인은 김장환의 제자로, 1973년 겨울 농한기에 김장환의 부천 공방에 가서 각궁제조기술을 배웠다. 1975년부터는 부천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제궁기술을 연마하였다. 그 후 1979년 충청남도 당진의 활터인 학유정(鶴遊亭)에 공방을 열고 각궁을 제작하였다. 1982년 관운정(觀雲亭)이 있는 연기군 전의면(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으로 이주하였으며, 1990년 무렵에 ‘국궁제작소’라는 이름의 공방을 열고 각궁 제조에 종사하였다. 오늘날 주장응 장인의 각궁은 지명을 따서 ‘전의활’, 또는 ‘조치원활’이라 불리고 있다.

[전의 궁인의 활동]

1982년부터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공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2001년 2월 5일에는 그의 아들 또한 각궁 제작을 가업으로 계승한다는 점을 인정받아 충청남도로부터 ‘전통문화가정’으로 지정되었다. 2002년 대한궁도협회 공인 명궁으로 승단하였다.

2004년에는 전의면에 사재를 들여 동산정(東山亭)이라는 활터를 만들고 전의 각궁을 제작하면서 수제자를 길러 냈다. 제자들은 각각 안산, 광주, 충주에서 독립하여 각궁을 제작하고 있다. 전의 궁인은 전통적인 공예기술로서 기술을 보호하고 전승하기 위하여 2010년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었고,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2012년 12월 31일 세종특별자치시 무형문화재 제1호로 재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세종특별자치시 무형문화재로 다시 재지정되었다.

현재 주장응 장인은 각궁 기술을 계승하기 위하여 제자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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