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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531
한자 星山裵氏
이칭/별칭 성주배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윤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584년(선조 17) - 배천의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654년(효종 5) - 배천의 사망
입향 시기/일시 1600년대 전후연표보기 - 배천의 입향
본관 성산배씨 본관 - 경상북도 성주군 성산
입향지 성산배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성산배씨 집성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노송리 성산배씨의 재실 숭모재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저산리 산수2길 47
성씨 시조 배위준
입향 시조 배천의

[정의]

배위준을 시조로 하고 배천의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배위준(裵位俊)을 시조로 하고 배유(裵裕)[1403~1472]를 파조로 하는 성산배씨는 배천의(裵天義)[1584~1654]가 1600년대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 입향한 이래 후손들이 현재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연원]

성산배씨는 성주배씨(星州裵氏)라고도 한다. 시조는 배위준이며, 고려 때 삼중대광 벽상공신(三重大匡壁上功臣)에 올랐다. 배인경(裵仁敬)은 충선왕 때 추밀원사(樞密院使)를 지낸 후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에 봉하여졌다. 흥안은 성산의 옛 지명으로, 성산배씨는 성산을 관향(貫鄕)[시조(始祖)가 태어난 곳]으로 삼고 있다.

배인경의 아들 배문적(裵文迪)과 배무적(裵武迪)이 크게 이름을 떨쳤다. 이후 후손들은 화당공파(花堂公派), 안렴공파(按廉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직제학공파(直提學公派), 재신공파(宰臣公派)로 분파되어 세계(世系)[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계통]를 이어 오고 있다.

[입향 경위]

연동면 노송리 성산배씨는 조선시대 집현전에서 활동한 배유를 파조로 하는 녹야당공파(綠野堂公派)이다. 입향조는 배유의 7세손 배천의로 임진왜란 때 조헌(趙憲)의 휘하에서 의병으로 활동한 배경걸(裵敬傑)의 손자이다. 배천의는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공을 세워 진무일등공신(振武一等功臣)이 되었고, 녹권(錄券)[공신의 훈공을 새긴 쇠로 만든 패]을 받았다. 또한 선전관으로 북도(北島)의 우후(虞候)를 거쳐 사천현감(泗川縣監)을 지냈다.

배천의가 입향한 유래에 대하여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첫 번째는 배유가 생육신(生六臣)과 사귀어서 세조가 크게 노하여 청주로 귀양을 보내 후손들이 인근 지역인 노송리에 살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배천의가 아버지와 청원군 남이면 지역에서 살았는데 누이의 남편 김언신(金彦信)[연동면 노송리 경주김씨 입향조]과의 연고로 노송리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후손으로는 배천의의 아들로 창릉령(昌陵令)에 제수되고 통훈대부(通訓大夫)를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 받은 배경성(裵慶星), 돈령부도정공(敦寧府都正公)을 지내고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증직 받은 배윤저(裵允著)가 있다. 또 효자로 동몽교관(童蒙敎官) 조봉대부(朝奉大夫)를 증직 받은 배덕형(裵德衡), 수승 정삼품(壽陞 正三品)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른 배성호(裵聲浩) 등이 있다.

[현황]

1988년 『연기군지』에 의하면 노송리 성산배씨는 40가구가 확인되며, 2019년 현재 26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기군성산배씨는 2000년에는 58가구 177명이다. 2015년 세종특별자치시의 성산배씨는 365명으로 남자 169명, 여자 196명이다.

[관련 유적]

노송리 성산배씨의 재실 숭모재(崇慕齋)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저산리 산수2길에 위치하며, 매년 음력 10월 3일에 향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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