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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560
한자 全州李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윤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586년(선조 19) - 이중재 출생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650년(효종 1)연표보기 - 이기휴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638년(인조 16) - 이중재 사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710년(숙종 36)연표보기 - 이기휴 사망
입향 시기/일시 1500년대 중반 - 이원룡 입향
입향 시기/일시 임진왜란 시기 - 이몽경|이중재|이구순|이운망 입향
입향 시기/일시 1624년경연표보기 - 이만성 입향
입향 시기/일시 1600년대 후반 - 이기휴 입향
입향 시기/일시 1700년대연표보기 - 이광석 입향
본관 전주이씨 본관 - 전라북도 전주시
입향지 전주이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소정리 지도보기|장군면 태산리지도보기|장군면 금암리지도보기|전의면 달전리지도보기|연서면 쌍전리지도보기|연동면 합강리지도보기|금남면 성강리지도보기|금남면 석교리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전주이씨 세거지 -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소정리 지도보기|장군면 태산리지도보기|장군면 금암리지도보기|전의면 달전리지도보기|연서면 쌍전리지도보기|금남면 성강리지도보기|금남면 석교리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전주이씨 삼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금암리 174-22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전주이씨 덕천군 사우 및 묘소와 신도비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태산길 93-6 [태산리 101]지도보기
성씨 시조 이한
입향 시조 이원룡|이몽경|이운망|이구순|이중재|이만성|이기휴|이광석

[정의]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원룡, 이몽경, 이운망 등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이한(李翰)을 시조(始祖)로 하는 전주이씨는 1500년대 이후 세종특별자치시 전 지역에 흩어져 살며 집성촌을 형성하여 왔고, 조선의 번성과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세종 지역의 유력한 성씨가 되었다.

[연원]

전주이씨는 전라북도 전주에서 대대로 살아온 토착 성씨로, 시조는 신라 때 사공(司功)을 지낸 이한이다.

이한의 선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으나 이한 이후 전주에 세거하여 이(李)씨 성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보아 후손들은 전주를 관향(貫鄕)[시조가 난 곳]으로 삼았다.

이한의 22세손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한 이후 전주이씨는 왕성(王姓)[왕족 성씨]이 되었다.

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 크게 번성하여 여러 왕자인 대군(大君)과 군(君)을 파조로 하여 세계(世系)[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계통]를 이어 왔다.

세종 지역의 전주이씨는 대부분이 덕천군파(德泉君派)와 양녕대군파(讓寧大君派) 후손들이다.

[입향 경위]

소정면 소정리 전주이씨 양녕대군파의 입향조는 이원룡(李元龍)이다. 경기도 이천에서 살다가 아버지 이효당(李孝堂)[1530~?]이 온양현감을 지낸 것이 인연이 되어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장군면 태산리 덕천군파의 입향조는 이몽경(李夢慶)으로, 덕천군 이후생(李厚生)[1397~1465]의 고손이다.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세거하였다가 임진왜란 때 이몽경 외가의 세거지인 태산리로 낙향하게 되었다 한다.

장군면 금암리 전주이씨는 이구순(李久洵)을 입향조로 하고 있다. 이구순은 이목(李穆)[1471~1498]의 증손으로 공주목사, 금산군수 등을 거쳐 숭정대부 의정부 우찬성을 지냈다. 이구순은 경기도 김포 일대에서 살다가 난리를 피해 당시 공주 우성면 내산리로 내려왔다가 다시 금암리로 옮겨 터전을 잡았다.

연서면 쌍전리 전주이씨는 근령군파(謹寜君派)인 이중재(李重梓)[1586~1638]가 입향조이다. 임진왜란 때 이중재의 아버지 이범(李範)[1535~1593]은 진도군수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고 형 이중희(李重禧)는 왜군에게 인질로 잡혀갔다. 왜군이 왕족은 볼모로 잡아간다 하여 7세인 이중재는 노비의 등에 업혀 쌍류리로 은거하게 되었다. 쌍전리에 세거하던 평산신씨를 부인으로 삼으면서 정착하였다.

덕천군의 9세손 이운망(李雲望)은 피란처를 찾아 전의면 달전리에 입향하였다. 정확한 입향 사유는 알 수 없다.

연동면 합강리 전주이씨 양녕대군파의 입향조는 공조판서를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 받은 이만성(李萬晟)으로, 이괄의 난을 피하여 낙향하였다. 이후 양녕대군파는 합강리 지역을 비롯한 금남면 석교리·황용리·대박리·영대리 등지에 분가하여 집성을 이루었다.

금남면 성강리 전주이씨 입향조는 금암리 입향조 이구순의 증손 이기휴(李基休)[1650~1710]이다. 이기휴의 아버지 묘소는 성강리와 인접한 공주시 반포면 지역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에 선대가 살던 금암리를 떠나 분가하여 성강리에 살면서 시중공파(侍中公派)를 형성하였다.

금남면 석교리[현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에는 양녕대군의 아들 이광석(李廣石)을 파조로 하는 돌산부정파(突山副正派) 후손 이후성(李後晟)이 1700년대에 입향하여 정착하였다.

[현황]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의 성』에는 전주이씨가 서면 쌍전리 49호, 금남면 석교리 39호인 동족마을로 기록하고 있다.

1988년 전주이씨는 연기군 조치원읍 중심지인 원동에는 48가구, 정동에는 48가구, 남동에는 42가구 등이 거주하였다. 전주이씨 입향지인 서면 쌍전리에는 43가구, 금남면 황용리에는 34가구, 석교리에는 40가구로 집성촌을 이룬 것으로 확인된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기군전주이씨는 1985년에는 1,395가구 6,256명, 2000년에는 1,608가구 5,165명이다. 2015년 세종특별자치시의 전주이씨는 1만 1,781명으로 남자 5,945명, 여자 5,836명이다.

[관련 유적]

덕천군 이후생을 제향(祭享)[제사의 높임말]하는 사당인 장군 덕천군 사우 및 덕천군 묘소와 덕천군 신도비가 장군면 태산리에 있다.

전주이씨 덕천군파종친회 주관으로 매년 음력 10월 1일 정오에 덕천군 묘소에 향사(享祀)[제사를 지냄]하고, 음력 11월 10일 정오에 장군 덕천군 사우에서 기신제(忌晨祭)를 지내고 있다.

장군 덕천군사우는 2012년 12월 31일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되었다.

전주이씨 이정환(李廷煥)[1604~1671]과 손자 이경설(李景卨)[1650~1708]·이경익(李景益)[1655~1708]의 효행을 기리는 전주이씨 삼효 정려장군면 금암리에 건립되었다. 전주이씨 삼효 정려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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