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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622
한자 金忠烈
영어공식명칭 Gim Chungryeol
이칭/별칭 왕호,운봉,김충열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서정길 312[고등리 50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84년(선조 17)연표보기 - 김충열 출생
몰년 시기/일시 1668년(현종 9)연표보기 - 김충열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65년(현종 6) - 김충열 명정 받음
사당|배향지 효자 김충열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서정길 312[고등리 506]지도보기
성격 문인|효자
성별
본관 강릉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문인으로, 살아 있을 때 효자 정려를 받은 인물.

[개설]

김충열(金忠烈)[1585~1668]은 충청도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일대]에 세거한 강릉김씨 인물이다. 부친에 대한 지극한 효성이 알려져 살아 있을 때 효자 명정(銘旌)[충·효·열을 행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주는 최고의 포상]을 받았다.

[가계]

김충열은 강릉김씨 전의현 입향조인 김승로(金承露)의 9세손이며, 김장생(金長生) 문하생인 부안현감 김해수(金海壽)의 손자이자 김산두(金山斗)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김충열은 본관(本貫)은 강릉이고, 호는 왕호(王壺) 또는 운봉(雲峰)이다.

10세 때 아버지 김산두가 병으로 고생하자 동생 김신렬과 함께 정성껏 간호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듬해 운명하였다. 그 후 할머니와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다.

김충열의 효행이 알려져 고을 현감이 환곡 때마다 반드시 효자 김충열이 왔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그 후 할머니가 돌아가시니 아버지를 대신하여 3년간 시묘살이를 하고, 김충열이 61세 되던 1644년에 모친상을 당하자 역시 3년 시묘살이를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60년이 되던 해에 다시 상복을 입고 시묘살이를 시작하여 3년을 마쳤다.

1666년(현종 7)에 왕이 온양으로 행차하였을 때는 대사헌 조복양(趙復陽)의 상언(上言)[신하가 사사로운 일로 임금에게 글을 올리던 일]으로 음식물을 하사받았다.

김충열은 1668년에 사망하였다.

[묘소]

『송자대전』 ‘효자 김충열전(金忠烈傳)’에 전동면 청람리 부로곡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과 이상이 찬(讚)하고 송준길이 서(序)한 묘비가 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는 확인할 수 없다.

[상훈과 추모]

김충열의 효행이 알려지며 1665년(현종 6) 효자로 명정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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