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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659
한자 金宗喆
영어공식명칭 Kim Jongcheol
이칭/별칭 여명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55년(영조 31)연표보기 - 김종철 출생
몰년 시기/일시 1817년(순조 17)연표보기 - 김종철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68년(고종 5) - 김종철 정문 받음
추모 시기/일시 1868년(고종 5) - 김종철 조봉대부 동몽교관에 추증됨
출생지 김종철 출생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김종철 거주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효자 김종철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 산85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강릉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가계]

김종철(金宗喆)[1755~1817]의 본관은 강릉이고, 자는 여명(汝明)이다. 김상기(金尙基)의 둘째 아들이다.

[활동 사항]

어린 시절부터 효성이 남달리 지극했던 김종철은 8세가 되던 해 어머니가 병으로 눕게 되자 어린 나이에도 곁을 떠나지 않았고, 찬 이슬을 맞아 가며 하늘에 기도하는 등 지성으로 봉양하였다. 모친이 식사하는 수저의 각도를 살피는 것으로 어머니가 식사를 맛있게 드시는지 알아차렸다 한다.

병이 깊어져 모친이 거동을 할 수 없게 되자 항상 곁에서 시중을 들며 모친의 속옷을 직접 빨고 변기를 비우는 일까지 몸소 하였다.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식음을 전폐하고 애통해 하며 아침저녁으로 산소를 찾아 성묘하였다고 한다. 또한 부친이 병으로 누워 있다가 위급한 때에는 과거 공부도 사양하고 부친을 돌보았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드려 소생시키기도 하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였는지 부친상을 치르고자 할 때 꿈에 한 도사가 나타나 비암산(碑巖山) 분지의 정혈처에 묏자리가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하며, 정혈처에 묘를 쓰고 난 후 가산과 자손이 크게 번성하였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김종철은 극진한 효성으로 1868년(고종 5)에 정문(旌門)[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기 위하여 집 앞에 세우던 붉은 문]을 받고 조봉대부 동몽교관에 추증(追贈)[종2품 이상 벼슬아치의 죽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게 벼슬을 주던 일]되었다.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에 효자 김종철을 기리는 효자 김종철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가 있다. 효자 김종철 정려는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 각진 주춧돌 위에 맞배지붕을 올렸다. 내부에는 중수기 현판이 걸려 있다. 효자 김종철 정려는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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