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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904
한자 邊應井祠堂
이칭/별칭 충신 변응정 사당
분야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동막골길 73-41[청람리 201-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안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30년연표보기 - 변응정 사당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9년 - 변응정 사당 개축
문화재 지정 일시 2001년 05월 31일연표보기 - 변응정 사당 연기군 향토유적 제34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14년 09월 30일연표보기 - 변응정 사당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34호 지정
문화재 해지 일시 2014년 09월 30일연표보기 - 변응정 사당 연기군 향토유적 제34호 지정 해지
현 소재지 변응정 사당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동막골길 73-41[청람리 201-1]지도보기
원소재지 변응정 사당 -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 청람리 245
성격 건물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칸
관리자 원주변씨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34호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청람리에 있는 변응정을 기리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운 사당.

[개설]

변응정 사당임진왜란 당시 금산 전투에서 전사한 충신 변응정(邊應井)[1557~1592]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변응정은 1585년(선조 18) 무과에 응시하여 급제한 후 월송진 만호와 선전관을 지냈다. 해남현감으로 있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내의 소란을 진정시키고 격문을 돌려 의병을 규합하였다.

금산에서 전투를 하던 조헌과 합류하기 위하여 의병을 이끌고 진군하였지만 조헌이 전사한 뒤 도착하였다.

이후 변응정은 김제군수 정감과 손을 잡고 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렸으나 밤에 적군의 습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청람리 큰말 마을에 위치한다.

원주변씨가 오래 전부터 살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종가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으로 이주하여 후손들이 남아 있지 않다.

[변천]

1930년 변응정의 충절을 기리려고 원주변씨 후손들이 주도하여 종가 뒤편 야산에 사당을 건립하였다.

퇴락 위기에 놓여 있던 것을 2009년 보조금을 받아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단장하였다.

2001년 연기군 향토유적 제34호로 지정되었다가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으로 해지되고, 2014년에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34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양 측면 1칸 건물이었으나 2009년에 개축하여 현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을 갖추었다.

[현황]

변응정 사당은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34호로 지정되어 있다.

변응정은 금산 종용사(從容祠)에도 조헌(趙憲), 고경명(高敬命) 등과 함께 제향되어 있다.

변응정의 당기와 축문은 우암 송시열이 만들었다. 행장은 우계 성혼, 죽천 김진규, 지재 민진후 등 세 명이 지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청람리 일대에 세거한 원주변씨 사족(士族)[문벌이 좋은 집안]의 동향과 활동을 살펴보고, 동시에 변응정의 치적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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