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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1247
한자 長丞祭
영어공식명칭 Religious Ritual for a Jangseung
이칭/별칭 당산제,장승고사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민정희

[정의]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음력 정월 보름에 마을에 액운을 막기 위하여 장승에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장승은 나무나 돌에 무서운 표정의 사람 얼굴 모습을 깎거나 새기고 그려서 마을 어귀에 세운 하당신(下堂神)이다. 장승을 세우는 까닭은 잡귀와 재액으로부터 마을을 방어하기 위하여 이다. 마을 사람들은 장승의 겉모습을 되도록이면 무사(武士), 장군(將軍), 역사(力士), 문수(門守) 등을 흉내 내 무섭게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 장승의 표정은 그다지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다. 무심하기도 하고 바보스럽기도 하고 심지어 우스꽝스럽기조차 하다. 주민들은 장승에게 당당한 위엄을 부여하고 잡귀 구축의 역할도 보강하기 위하여 각종 명문(銘文)을 몸통에 묵서(墨書)하거나 새겨넣었다.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은 명문의 대표적인 예이다. 장군이란 신격을 부여하여 잡귀·잡신을 제압하고 천하와 지하를 다스리는 권능이 있음을 선포하고자 하였다.

장승은 재료에 따라서 목장승과 돌장승으로 구분된다. 목장승은 매년 또는 일정한 햇수를 간격으로 새로 깎아 세우는데 만드는 과정에서 동민의 결속과 화합을 강화한다. 돌장승은 목장승을 새로 깎아서 모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을공동체의 응집력은 감소한다. 원래부터 돌장승을 모신 마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장승을 모신다면 대개 목장승을 마을 어귀에 세웠다. 그러나 점차 세월이 변하면서 장승목을 구하기도 어렵고 마을 사람들의 고령화가 확산하면서 목장승을 돌장승으로 바꾼 마을이 많다. 돌장승은 한 번 세워 두면 거의 영구히 모실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 지역의 장승제]

세종특별자치시의 여러 마을에서 장승제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소정면 대곡리 대사동[한절골]에서는 윤년이 드는 해 음력 정월 열나흘에 장승제를 지낸다. 마을 어귀에 원래 숲이 무성하였다. 마을 어귀로 들어가자면 왼쪽에 천하대장군, 오른쪽에 지하대장군이 있다. 대사동 장승은 충청남도에서 가장 전형적인 목장승의 외형을 갖추었다.

전의면 관정1리 느릿골에서는 음력 정월 열나흗날 마을 어귀 숲거리에서 장승제를 지낸다. 지금은 숲이 없어졌지만 오래전에는 매우 울창한 숲이 있었다. 원래 마을 어귀는 서쪽과 동쪽 2곳에 있었다. 마을 어귀 동쪽과 서쪽에 각각 서방백제대장군(西方百帝大將軍)과 동방백제대장군(東方白帝大將軍)이라고 묵서한 목장승이 있었다. 전의면 읍내3리 북동네에서도 1980년대 초반까지는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 마을 어귀의 목장승에 제사를 지내었다. 당산제라고도 불렀다. 1950년대에는 전의면 일대에서 장승과 솟대를 어느 마을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 현재 시멘트 장승이 천변 도롯가에 나란히 서 있다. 남장승은 사모를 썼고 여장승은 족두리를 썼다. 전의면 영당리 당마루에서도 마을 어귀에 목장승을 세우고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흘에 장승제를 지내었다. 1990년대 초엽에 교회 신도들과 일부 마을 청년들의 주장으로 장승제를 폐지하였다. 그러나 폐지 후 수년간 마을에 각종 불상사가 끊이지 않자 다시 장승제를 부활시켰다. 목장승은 형편상 다시 세우지 않고 대신에 2개의 선돌을 설치하고 장승제를 지낸다.

장군면 송학1리에서는 음력 정월 대보름 새벽 기고사를 지내기 전에 장승제를 지낸다. 마을 주민들은 장승제라는 말을 잘 쓰지 않고 장승고사라고 부른다. 장승은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고 묵서한 남녀 돌장승 한 쌍이다.

금남면 국곡리에서는 마을 어귀 양옆에서 서로 멀리 마주 보고 있는 선돌에 장승제를 지낸다. 마을 진입로에 있는 선돌을 남장승으로, 논 한복판에 있는 선돌을 여장승으로 여긴다. 크기는 모두 2m쯤 된다. 근래에는 음력 정월 열나흘 오전 10시경에 장승제를 지낸다. 금남면 달전리 원달전의 마을 어귀인 장승백이에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고 묵서한 장승이 있었다. 음력 정월 대보름 오전에 샘제를 지내고 이어서 장승제를 지내었다. 금남면 석삼리(石三里)에는 마을 어귀에 돌장승 3기가 있었다. 그래서 석삼리를 돌삼골이라고도 불렀다. 일설에 의하면 마을 앞의 허한 방위 3곳에 각각 큰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바위는 약 50여m 간격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가운데 바위가 가장 컸다. 1980년대 후반 경지정리를 하면서 모두 없어졌다.

장승제의 절차와 방법은 산신제, 거리제 등의 동제와 유사하다. 목장승을 세우는 마을에서는 장승 나무를 베어 오는 것부터가 제사의 시작이었다. 장승 나무를 베기 위하여 제관 일행이 풍장을 치며 산에 오른다. 잔치 분위기 속에서 통나무를 깎고 다듬고 글씨를 새겨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해마다 새로 만든다. 이윽고 해가 지면 여느 동제와 마찬가지로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장승제가 치러진다. 헌작(獻爵), 재배(再拜), 독축(讀祝), 소지(燒紙)의 순서로 비교적 간단하게 진행된다. 장승제를 마치면 다시 한바탕 울리는 쇠가락 그리고 이어지는 음복(飮福)과 덕담(德談)들은 장승제의 마지막 절차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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