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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팔도감영에서 전국 군현의 모습을 회화식으로 고지도에 수록한 세종 지역의 지도. 『1872년 지방지도』는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국가 지도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1872년 3월부터 6월 3개월에 걸쳐 각 군현에서 자체적으로 완성된 지도가 도별로 수합되었다. 수효는 모두 461장에 이른다. 『1872년 지방지도』 제작 시 진영(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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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팔도감영에서 전국 군현의 모습을 회화식으로 고지도에 수록한 연기현 지도. 『1872년 지방지도』는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국가 지도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1872년 3월부터 6월 3개월에 걸쳐 각 군현에서 자체적으로 완성된 지도가 도별로 수합되었다. 수효는 모두 461장에 이른다. 『1872년 지방지도』 제작 시 진영(鎭營)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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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팔도감영에서 전국 군현의 모습을 회화식으로 고지도에 수록한 전의현 지도. 『1872년 지방지도』는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국가 지도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1872년 3월부터 6월 3개월에 걸쳐 각 군현에서 자체적으로 완성된 지도가 도별로 수합되었다. 수효는 모두 461장에 이른다. 『1872년 지방지도』 제작 시 진영(鎭營)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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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7월부터 1896년 2월까지 세종 지역에서 추진된 개혁 운동. 갑오경장은 1894년 7월부터 1896년 2월까지 약 19개월 동안 3차에 걸쳐 정치·경제·사회 등 여러 방면에서 진행된 근대화 개혁이다. 특히 근대적 행정 체제를 도입하여 오늘날 세종 지역의 근간이 되는 행정 조직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 후기에 개화파는 동학농민군이 내세운 폐정개혁안과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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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부터 1904년까지 세종 지역을 포함하여 건설된 서울~부산 간 철도 부설 공사. 경부선 철도(京釜線鐵道) 부설 공사는 1901년에 착수하여 1904년 완공되었다. 경부선이 전의군, 연기군을 통과하기 때문에 경부철도부설공사에 전의 지역과 연기 지역의 많은 노동력이 수탈되었다. 조선 최초로 설치된 철도는 1899년 9월 18일 개통된 노량진과 제물포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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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충청도 각 고을의 인물에 대한 사적을 모아 기록한 책. 세종 지역 출신의 유학자,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록한 책이다. 진시책의 후손 진병갑이 2006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장세오(張世五)와 윤대영(尹大榮)이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장세오와 윤대영의 생몰년과 활동 사항은 확인할 수 없다. 1905년경 충청도 관찰사였던 이건하(李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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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성강리에 있는 남이웅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사당. 금남 남산영당은 남이웅(南以雄)[1575~1648]의 영정을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으로, 1906년 공주 유림들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남이웅의 영정은 모두 4점이며, 이 가운데 2점은 초본이다. 초본 2점 중 하나는 1627년 명나라 사행(使行)[사신이 임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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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에 있는 성삼문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사당. 문절사(文節祠)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사육신의 한 사람인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1418~1456]을 제향하기 위하여 지어진 사당이다. 공식 명칭은 매죽헌사우(梅竹軒祠宇)이다. 성삼문의 정려인 문절사가 금남면 달전리에 세워진 때는 1903년으로, 사실 달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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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철종 연간에 제작된 세종 지역이 수록된 전국 지도. 종이에 채색하였고, 1조 23첩이다. 보물 제1358-2호이다, 고산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대동여지도』를 필사한 채색 지도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와 유사한 내용으로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하여 작성한 고본(稿本)[처음 쓴 내용의 책]일 가능성과 『대동여지도』에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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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세종 지역에서 일어난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굳어 가자 일본인들은 지배자 행세를 시작하였고, 특히 조선에 이민 온 하층민의 행패가 심하였다. 청나라 군대의 진입을 막기 위하여 잠시 물러난 동학군은 이번에는 일본군과 무능한 조정에 저항하기 위하여 갑오년 9월 일제히 봉기하였다. 전라도의 남접과 충청도의 북접이 힘을 합하였으며, 2대 교주 최시형의 교령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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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순을 시조로 하고 손창조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밀양손씨 시조 손순(孫順)의 선계는 신라 개국 당시 사로국 6촌 촌장의 한 사람인 무산대수촌장(茂山大樹村長) 구례마(俱禮馬)이다. 구례마는 박혁거세를 신라의 왕으로 추대하여 개국공신이 되었고, 32년(유리왕 9)에 사성(賜姓)[임금이 공신에게 성(姓)을 내려 주는 일 또는 임금으로부터 성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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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11월 7일 세종 지역인 연기 복룡 일대에서 의병과 일본 경찰대가 벌인 전투.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에 분개하여 권정남(權正南)이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 지역인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담리 표석동 일대에서 의병을 모아 봉기하였다. 임대수(林大洙)[1882~1911] 등 의병 30여 명이 조치원에서 파견된 일본군 수비대, 경찰대와 복룡(伏龍) 일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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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여양진씨의 재실을 새롭게 건립하고 그 내력을 새긴 현판. 불목동여양진씨묘실신건기(佛木洞驪陽陳氏墓室新建記)는 여양진씨(驪陽陳氏)의 선영(先塋)[조상의 무덤 또는 조상의 무덤 근처의 땅]이 있던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현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의 불목동(佛木洞)에 재실(齋室)[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을 신축한 것을 기록한 현판이다. 불목동여양진씨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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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부강리에 있는 개항기 전통가옥. 세종 홍판서댁은 안채 대청에 적힌 상량문에 ‘崇禎紀元後四丙寅二月二十四日申時上樑’이라는 기록이 있어 1866년(고종 3)에 지은 집으로 확인된다. 정면 6칸 측면 3칸의 ‘ㄷ’자형 안채와 정면 6칸 측면 2.5칸의 ‘ㄷ’자형 사랑채가 마주 보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정남향의 ‘ㅁ’자형 평면을 구성하며, 사랑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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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4년에 간행된 현 세종 지역의 옛 행정 구역 위치가 설명된 관찬 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당시 수도인 경도 한성부(漢城府)와 준수도 지위에 있던 구도 개성유후사(開城留後司)를 독립적으로 다루었다. 이어 경기도[41개], 충청도[55개], 경상도[66개], 전라도[56개], 황해도[24개], 강원도[24개], 평안도[47개], 함길도[21개] 등의 334개 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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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연기리에 있는 개항기 흥선대원군이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 척화비는 1866년(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쇄국의 결의를 굳히고 온 국민에게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하여 1866년 비문을 짓고 1871년 4월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각처에 세운 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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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신대리 학림사에 소장된 개항기 신중도. 연서 학림사 신중도(燕西鶴林寺神衆圖)는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 신중(護法神衆)의 모습을 묘사한 불화이다. 중앙의 위태천(韋駄天)을 중심으로 신장(神將)과 천자(天子)가 좌우 협시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 하단에 위치한 화기에 따르면 1891년에 조성되었다. 2014년 12월 22일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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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응암리에 있는 박기정의 처 광산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열녀 광산김씨 정려는 박기정(朴基鼎)[1792~1830]의 처 광산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광산김씨는 광성군 김국광의 후손인 김구택(金龜澤)의 딸로, 무안박씨 가문으로 출가하였다. 광산김씨가 혼례를 치른 사흘 후 뜻밖에도 남편이 병을 얻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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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에 있는 김환의 처 남양홍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열녀 남양홍씨 정려는 안동김씨 김환(金瓛) 처 남양홍씨[?~1736]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1738년(영조 14)에 명정을 받아 건립한 것이다. 남양홍씨는 홍처한(洪處漢)의 딸로, 양친을 잃고 남매가 의지하며 길쌈으로 생계를 이어 가다 이웃 마을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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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있는 김기철의 처 밀양손씨와 김성흠의 처 창녕성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열녀 밀양손씨 창녕성씨 정려는 안동김씨 가문의 고부 밀양손씨(密陽孫氏)와 창녕성씨(昌寧成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양세정려기(兩世旌閭記)’와 ‘열녀정려기(烈女旌閭記)’에 의하면 밀양손씨는 어려서부터 부덕을 익혀 부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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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에 있는 유언하의 처 부안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운 정려. 열녀 부안임씨 정려는 유언하(兪彦夏)[1749~1819] 처 부안임씨(扶安林氏)의 시어머니에 대한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87년(고종 24)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부안임씨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임두칠(林斗七)의 손녀이자 임시윤(林時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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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 있는 장이상의 처 한양조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열녀 한양조씨 정려는 장이상(張彛相)[1816~1884]의 처 한양조씨(漢陽趙氏)[1812~1884]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한양조씨는 조우규(趙禹圭)의 딸로, 결성장씨 가문에 출가하였다. 남편 장이상은 판윤 장전(張詮)의 10세손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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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암을 시조로 하고 천만리를 중시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입향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영양천씨(潁陽千氏)는 좌윤공파의 통덕랑공파가 부여 은산에서 살다가 금강 수운을 이용한 상업 활동과 파평윤씨와의 혼인을 인연으로 1900년경 남면 연기리로 입향하였다. 영양천씨는 중국에서 유래한 성씨이다. 시조 천암(千巖)은 명나라 때 도총장(都總將)과 판도승상(版圖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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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문곡리에 있는 이광흥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이광흥 효자각은 효자 이광흥(李光興)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91년(고종 28)에 세운 정려이다. 이광흥은 경주이씨로, 국당공(菊堂公) 31세 후손이다. 이광흥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효심이 깊어 주위로부터 효자로 이름이 높았다. 10살이 되던 해에 부친이 위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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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건립 후 지은 일행정의 기문을 새긴 현판. 일행정(一幸亭)은 진시책(陳時策)[1831~1906]이 여양진씨(驪陽陳氏) 문중 자제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한여름에 더위를 피하게 할 목적으로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에 세운 정자이다. 일행정기(一幸亭記)에는 정자(亭子)를 세우게 된 배경, 의미, 목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일행정기(一幸亭記)는 진병갑, 진병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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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편찬된 충청도 전의군의 읍지. 필사본 1책으로, 이칭은 ‘전성지’이다. 표지에 한자로 ‘全城誌’가 쓰여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 『전의읍지』의 내용은 건치연혁(建置沿革)·군명(郡名)·관직(官職)·성씨(姓氏)·강역(疆域)·방리(坊里)·도로(道路)·형승(形勝)·산천(山川)·성지(城池)·풍속(風俗)·토산(土産)·진공(進貢)·공해(公廨)[관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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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군대해산 이후 세종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 의병. 세종 지역에서는 1907년 8월 군대해산 이후 항일의병 활동이 나타난다. 세종 지역 의병은 공주와 연기·전의의 산림지역을 근거지로 삼고 일제의 추격을 피하면서 기민한 작전으로 전과를 올렸다. 을사조약이 늑결된 이후 의병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1907년 7월 고종이 강제 퇴위되고 8월에 일제가 군대를 해산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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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에 중수한 일행정의 기문을 새긴 현판. 중수일행정기(重修一幸亭記)는 진세현(陳世顯)[1854~1928]이 무너진 일행정(一幸亭)을 다시 세우게 된 경위를 기록하고 있다. 진세현은 일행정을 처음 세운 진시책(陳時策)[1831~1906]의 아들이다. 호는 화잠(華岑)이다. 어려서부터 시부(詩賦)에 능하여 『화잠만집(華岑晩集)』, 『화잠소창(華岑消唱)』 등의 문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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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영당리에 있는 진주정씨 4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진주정씨 사효 정려는 진주정씨(晉州鄭氏) 정원룡(鄭元龍)[1812~?]과 정원룡의 아들 정대권(鄭大權)[1850~1902], 정원룡의 처인 효부 파평윤씨(坡平尹氏)[1811~?], 정원룡의 손부인 열녀 한산이씨(韓山李氏)까지 모두 네 사람의 효열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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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김정호가 작성한 『청구도』를 모사한 이본. 김정호(金正浩)는 『대동여지도』 이전에 이미 『청구도(靑邱圖)』 등의 지도를 만들었다.『청구도』는 22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10리마다 점을 찍는 방식도 똑같다. 김정호가 만든 『청구도』의 이본(異本)은 현재 국내에 9본, 국외에 8본(일본 7본, 미국 1본)이 남아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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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편찬된 충청도 청주군의 읍지. 1책의 채색 지도가 첨부된 필사본으로 표지에 ‘충청북도청주군읍지(忠淸北道淸州郡邑誌)’라고 적혀 있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하고 있다. 이밖에도 연대 미상의 『청주군읍지』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1899년에 전국 읍지 편찬계획의 일환으로 작성된 청주군 읍지이다. 1871년에 편찬된 『호서읍지(湖西邑誌)』 수록 읍지를 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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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성리에 있는 이명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사당. 충정사는 조선 전기 문신인 이명(李蓂)[1496~1572]을 모신 사당이다. 이명은 본관이 예안(禮安)이며, 연산현감 이보간(李輔幹)의 아들이다. 자는 요서(堯瑞)이고, 호는 동고(東皐)이다. 1525년(중종 20)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28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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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부터 1910년까지 등사본 형태로 편찬한 충청남도의 도지. 『충청남도읍지』는 1906~1910년에 등사본 형태로 편찬된 충청남도 도지이다. 38개의 읍진지[36개 군의 37개 읍지와 1개 진지]를 등사하여 9책에 나누어 수록하였다. 지도도 등사하여 모두 흑백이다. 제3책에 전의지도(全義地圖), 전의아사도(全義衙舍圖), 전의현읍지(全義縣邑誌), 연기현지도(燕岐縣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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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충청도 각 군현에서 작성한 읍지와 사례들을 합편하여 편찬한 충청도의 도지. 1871년(고종 8) 충청도 각 군현에서 작성한 읍지와 사례들을 합편하여 17책으로 편찬한 충청도의 도지(道誌)로, 개항기 충청도 군현 사정과 함께 채색 지도가 첨부된 필사본이다. 2019년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총 17책이다. 채색지도가 첨부된 필사본이다. 가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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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발산리에 있는 강협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효자 강협 정려는 강협(康協)[1674~1750]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강협이 사망한 지 150여 년이 지난 1905년(광무 9)에 장예원경(掌禮院卿) 조정희(趙定熙)와 진사 장철상(張喆相) 등의 발론으로 명정을 받아 현 위치에 건립되었다. 강협은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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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판리에 있는 김백열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운 정려. 효자 김백열 정려는 김백열(金百悅)[1816~1868]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김백열은 본관이 안동, 자는 여행(汝行)이다. 김방경의 현손이며, 고려 후기 공양왕 대에 삼사(三司) 우사(右使)를 지내고 이성계를 적극적으로 도와 개국 1등 공신으로 태종 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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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에 있는 김한정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효자 김한정 정려는 김한정(金漢鼎)[1757~1804]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87년(고종 24)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김한정은 본관이 강릉, 자는 중삼(重三), 호는 구곡(龜谷)이다. 현재 세종 지역인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청라리에서 태어났다. 이곡(梨谷) 김천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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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달전리에 있는 박이명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효자 박이명 정려는 박이명(朴履命)[1823~1890]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91년(고종 28)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박이명은 본관이 고령이며, 자는 성지(性之)이다. 영성군 박문수(朴文秀)의 증손이며, 박승규(朴勝圭)의 아들이다. 부인은 전의이씨(全義李氏) 이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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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와촌리에 있는 성이복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효자 성이복 정려는 성이복(成爾復)[1713~1776]의 효행을 후세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남기고자 1891년(고종 28)에 명정을 받아 1892년에 건립되었다. 성이복은 본관이 창녕이고, 자는 양숙(陽叔)이다. 생부는 성석장(成碩章)[1689~1743], 생모는 전의이씨 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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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용암리에 있는 이면주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효자 이면주 정려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이면주(李勉疇)[1818~1871]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905년(광무 8)에 명정을 받아 1906년(광무 9)에 건립되었다. 이면주는 이무형(李茂亨)[1793~1861]과 결성장씨(結城張氏)[1789~1832]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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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에 있었던 임명즙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효자 임명즙 정려는 임명즙(林命楫)[1744~1808]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71년(고종 8)에 세워졌다. 임명즙은 본관이 부안(扶安)이고, 자는 백섭(伯涉)이다. 1774년(영조 20) 임종유(林宗儒)와 전주이씨 사이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효성이 지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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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에 있는 임수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효자 임수준 정려는 부안임씨 임수준(林秀俊)[1810~1875]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904년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임수준은 본관이 부안(扶安)이고 자는 사민(士民)이며, 호는 소재(素齋)이다. 1810년(순조 10) 충청도 연기군 남면 월산리에서 태어난 임수준은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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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용호리에 있는 임양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효자 임양문 정려는 부안임씨 임양문(林養文)[1744~1810]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임양문은 1744년(영조 20) 용호리에서 임시무(林時茂)와 정세평(鄭世枰)의 딸 진주정씨(晋州鄭氏)[1709~1782]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인 임양조(林養祚)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