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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007
한자 先史
영어공식명칭 Prehistor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선사/선사
집필자 이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선사

[정의]

세종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문자로 기록하기 이전의 시대.

[개설]

선사시대(先史時代)는 역사기록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시기나 문자가 해독된 고대 문명 이전의 시대로, 역사시대라는 용어와 대칭되는 개념이다.

19세기 과학주의 사고에 기초하여 지질학 개념이 만들어졌다. 생물 변화에 대한 진화이론이 성립되고 인류와 문화의 진화 과정에 대한 관념이 생겨나면서 선사시대라는 개념이 정립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가 선사 시대에 속한다. 초기 철기시대는 원사시대, 그 이후부터는 역사시대로 구분된다.

[세종 지역 선사시대의 특징]

구석기시대의 수렵채집 단계에서 신석기시대 원시 농경사회로 진화하면서 선사시대 인류사회는 집약적인 농경생활을 기반으로 계급사회가 진행되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가장 주목할 만한 사회 문화적 변화는 청동기시대에 나타난다.

농경사회 발전과 더불어 대규모 취락이 등장하고 집중된 고분의 조영과 같이 정치적인 권력의 확대가 진행되었다. 생활공간도 강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주변의 구릉 지역 등으로 확대되는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조사된 선사시대 유적은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 유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구석기시대는 지금으로부터 300만 년 전의 석기시대로, 뗀석기[마제석기(打製石器)]를 생활 도구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사람들은 무리지어 이동생활을 하였으며, 대개 채집경제를 이루었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 지역에서 확인된 구석기시대 유적은 주로 지표조사를 통하여 유물산포지 형태로 확인된다.

종촌리 도림이마을 유적에서는 발굴조사를 통하여 좀돌날몸돌[세석인석핵(細石刃石核)]과 긁개[소기(搔器)], 찌르개[첨두기(尖頭器)] 등 유물이 출토되었다. 금강을 중심으로 인근의 공주 석장리유적과 대전 용산동유적 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미루어 세종특별자치시 일대에서도 구석기시대 유적이 집중되어 확인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신석기시대는 채집경제와 더불어 농경이 이루어지면서 토기 사용이 확인되는 시기로,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략 1만년 전에 시작되어 기원전 1000년경에 끝난 것으로 보인다.

세종특별자치시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선사유적부터 형상이 구체적으로 확인되며, 석삼리 돌삼골 유적과 대평리유적에서 주거지 1기가 조사되었다. 이밖에 송담리유적의 수혈유구에서 횡주어골문 토기 조각이 확인되었으나 아직까지 분묘와 같은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청동기시대는 청동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철기가 나타나기 이전까지의 시기를 이른다. 무문토기시대라고도 부른다. 채집경제와 농경을 통해 정착생활로 변화하였으며, 확인되는 유구는 주거지를 비롯하여 고인돌[지석묘(支石墓)]·돌널무덤[석관묘(石棺墓)]·독무덤[옹관묘(甕棺墓)] 등이 있다. 이밖에 수전(水田)과 다양한 생활유적이 확인된다.

세종특별자치시에서 확인되는 청동기시대 유적 수는 급속히 증가하였다. 남면 송원리와 송담리유적, 연기리유적, 금남면 대평리유적, 석삼리, 봉기리·황룡리유적, 동면 용호리, 응암리유적 등 넓은 범위에서 확인된다.

주거지는 대부분 전기의 서울 가락동 유형 주거지가 주를 이루며, 대평리유적에서는 조기의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형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금남면 장재리·박산리·봉기리·신촌리, 연기면 세종리, 연동면송용리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금남면 봉암리에서는 청동검, 꺾창[동과(銅戈)], 세형동검이 발견되었다.

[의의와 평가]

세종특별자치시가 위치한 금강 중류역(中流域)에서 청동기시대 조기~후기에 해당하는 주거지와 관련 취락 유적이 확인됨으로써 금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이 청동기시대인들에게 중요한 삶의 터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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