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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030
한자 文學
영어공식명칭 Literatur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이기대

[정의]

세종 지역과 관련하여 언어와 문자로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예술.

[개설]

세종특별자치시의 문학은 세종 지역을 배경으로 하거나 세종 지역에서 출생·거주하는 등 연고가 있는 사람이 언어를 활용하여 남긴 작품을 의미한다. 지역의 문학은 입으로 전승될 수도 있고 문자를 통하여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전체를 포괄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문자화 된 작품을 중심으로 세종특별자치시의 문학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세종특별자치시에서 문자화된 문학 작품이 지금까지 계속 창작되고 있으며 유동적이기에 근대 이전까지 세종특별자치시와 연관성이 드러나 있는 작가나 작품을 대상으로 한정한다.

[세종특별자치시의 문학]

세종특별자치시의 문학 중 가장 오래 전에 나타난 작품은 비암사(碑巖寺)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비암사에 소장되어 있었던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에는 절의 창건 배경을 알려 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글도 짧고 내용 또한 일종의 발원문 성격을 지니지만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을 문자를 통하여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세종특별자치시의 문학이 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세종특별자치시와 연고가 있는 작가로는 박팽년(朴彭年)[1417~1456]이 확인된다. 박팽년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현재까지 시와 글씨 등이 전하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지역에는 박팽년과 관련한 행사들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김종서(金宗瑞)[1383~1453]의 문학 작품도 확인할 수 있다. 뛰어난 장수로 널리 알려진 김종서의 시조가 전하여지고 있는데 “삭풍(朔風)은 나뭇가지를 흔들고 밝은 달은 눈 속에서 차가운데/만리변성(萬里邊城)에 일장검(一長劍) 집고 서서/길게 휘파람 불고 크게 소리 한 번 지르니 거칠 것이 없구나”라고 한 부분에서 함경도 북방을 지키던 장수의 기개가 잘 드러난다. 김종서의 묘가 있는 대교리는 공주시에 속하여 있었지만 현재 세종특별자치시에 포함되어 김종서가 남긴 작품들도 세종특별자치시와 관련된 문학이 된다.

세종특별자치시의 문학으로 주목할 것 가운데 하나는 남이웅(南以雄)[1575~1648]의 부인인 남평조씨(南平曺氏)[1574~1645]가 기록한 『병자일기(丙子日記)』이다. 한문이 아닌 한글 일기라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병자일기』는 병자호란 당시인 1636년에 피난을 간 이야기와 전쟁 이후에 서산·당진·충주 등에 머물다가 1640년 서울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적고 있다. 피난 당시의 상황과 생활상을 여성의 섬세한 필체로 전하고 있다.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4호 지정되어 있다.

이상(李翔)[1620~1690]은 만년(晩年)[나이가 들어 늙어 가는 시기]에 이르러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사관정(四觀亭)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친 인물이다. 이상의 시문(詩文)은 후손인 이재에 의하여 『타우유고(打愚遺稿)』에 정리되었다. 한시 100수를 비롯하여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택리지(擇里志)』를 저술한 이중환(李重煥)[1690~1756]의 조부인 이영(李泳)과 초취부인 사천목씨를 비롯한 집안의 묘가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것이 밝혀졌다. 이중환과 세종특별자치시와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택리지(擇里志)』에는 세종특별자치시의 옛 지명인 연기(燕岐)와 관련된 기록들이 있어서 지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중환과 같은 맥락에서 이유태임성주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 세종특별자치시에서는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1607~1684]의 묘를 중심으로 초려역사공원을 조성하였다. 이유태는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제자로 충청지역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저서로는 『초려집(草廬集)』이 있다. 임성주(任聖周)[1711~1788]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자 문인이다. 문집인 『녹문집(鹿門集)』이 전하여지고 있다. 임성주의 묘 또한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명학3리에 있어서 임성주의 문학 활동과 작품들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관심을 가질 부분이 된다.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이재구(李載九)[1837~1887] 또한 세종 지역의 중요한 문인이다. 이재구는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봉산리에서 태어났으며 기호(畿湖) 유학의 거두로서 유림의 추앙을 받은 임헌회(任憲晦)[1811~1876]에게 학문을 배웠다. 임헌회는 말년에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진의리에 이주하여 살았다. 임헌회에게 여러 문인들이 몰려들었고 이재구도 함께 배웠다. 이재구의 문집으로 『불궤재유고(不櫃齋遺稿)』가 전하여지고 있다.

세종 지역의 문인으로 알려진 인물로는 장재규·성경운·성의석·성구용 등이 있다. 장재규(張在奎)[1882~1945]는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예양리에서 출생하였다. 나라를 잃은 심정과 형제의 정을 한시를 통하여 드러내었다. 성경운(成景運)[1882~1966]은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달전리에서 태어났으며 시문집인 『소산산고(小山散稿)』에 한시와 한문 산문이 남아 있다. 『서산일고(西山逸稿)』에 많은 한시 작품을 남긴 성의석(成義錫)[1849~1925]과 사후에 『의재집(毅齋集)』을 통하여 시문이 수습되어 있는 성구용(成九鏞)도 세종 지역의 문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임헌회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천안에서 태어났지만 충청남도 연기군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 세종특별자치시의 덕성서원(德星書院)에 배향되어 있다. 덕성서원에는 임헌회와 이재구 외에 전우(田愚)·김준영(金駿榮)·이유흥(李裕興)·조흥순(趙弘淳)·임헌찬(任憲瓚)도 함께 배향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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