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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194
한자 起龍里
영어공식명칭 Giry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기룡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심정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기룡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2012년 07월 01일 -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기룡리에서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기룡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7.2㎢
가구수 207가구
인구 353명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마을의 지형(地形)이 풍수지리적으로 보아 용(龍)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形局)과 닮아 지명을 기룡(起龍)이라고 하였다. 기룡리에는 막은골, 동막골, 은골, 자룡, 정골, 신림, 시묫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막은골[망골]마을은 기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옛날에 서울로 향하는 큰길이 있었는데 도둑이 많아 길을 막아서 생겨난 명칭이다. 자룡(自龍)마을은 북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용이 승천하였다는 굴이 있다. 신림(新林)마을은 공조참의를 지낸 평택임씨 임순우(林舜宇)가 정착하여 형성한 마을이며, 현재 주민의 대부분은 경주김씨이다.

[형성 및 변천]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연기현, 고려시대에는 청주목, 조선 전기에는 연기현, 조선 후기에는 연기군(燕岐郡) 서면(西面) 지역이었다. 1914년에는 연기군 서면의 기룡리, 효고리, 동산리, 은동리, 신림리, 봉강리 일부, 자룡리 일부를 병합하여 연기군 서면 기룡리(起龍里)가 되었다. 2012년 7월에는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기룡리에서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기룡리로 변경되었다.

[자연환경]

해발 고도 200m 내외의 산지가 분포하며, 남쪽과 북쪽의 산지 사이에는 좁은 저지대가 동서로 길게 나타난다. 저지대에는 서쪽 산지에서 발원하는 국촌천이 동쪽으로 흐르며, 하천 양쪽의 남쪽과 북쪽 산지에서 흐르는 물은 국촌천으로 유입된다. 하천 주변에는 가옥이 분포하며, 논과 밭도 소규모로 나타난다.

[현황]

연서면의 중서 지역에 있는 기룡리의 면적은 7.2㎢이다. 인구는 2020년 8월 기준 207가구에 총 353명이다.

마을의 대부분은 임야지대이며, 국촌천 주변에는 벼농사와 밭농사가 행하여진다. 은동마을에는 야채·고기·생선·탕 등 각종 한국요리에 들어가는 양념을 제조하는 한국소스 공장이 입지하여 있다. 교통은 국촌천을 따라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망골마을 입구에는 1773년에 세워진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2호 연서 효교비가 있다. 연서 효교비는 조선시대 홍씨 집안 9명의 효자를 기리기 위한 비다. 5대에 걸친 효자는 공조참의를 지낸 홍연경과 아들 홍연설, 손자 홍우적·홍우평·홍우구, 증손자 홍방만, 현손 홍득후·홍득일, 5대손 홍상직 등이다. 영조가 마을 이름을 효교(孝橋)라 고쳐 줄 정도로 홍씨 가문의 효행은 지극하였다고 한다. 한편 기룡리에는 봉월사·월현사·신복사 등 사찰이 있으며, 정신치료를 위한 기관으로 은혜기독병원, 노인요양원 사랑의 마을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10.07 현행화 인구는 2020년 8월 기준 207가구에 총 35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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