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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208
한자 文舟里
영어공식명칭 Munju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문주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심정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문주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2012년 07월 01일 -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문주리에서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문주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2.4㎢
가구수 65가구
인구 121명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마을 앞에 맑고 아름답게 흐르는 미호천(美湖川)을 문관(文官)이 배를 타고 떠나는 것에 비유하여 문주(文舟)라고 하였다. 많은 인물이 배출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문주리에는 갈말, 골말, 건넝, 치마바우마을 등 자연 마을이 있다.

갈말마을은 문주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앞에 갈대가 많아서 붙은 명칭이다. 처음에 인천채씨가 정착하였으나 현재는 아산이씨가 다수 거주한다. 골말마을은 갈말마을 동쪽에 있는 마을로 깊은 골에 자리하여 붙은 명칭이다. 곡촌(谷村)이라고도 한다. 건넝마을은 갈말마을 건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명칭이며 선비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연기현, 고려시대에는 청주목, 조선 전기에는 연기현, 조선 후기에는 충청도 연기군(燕岐郡) 동이면(東二面) 지역이었다. 1914년에는 충청도 연기군 동이면 문주리가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문주리가 되었다. 2012년 7월에는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문주리에서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문주리로 변경되었다.

[자연환경]

마을의 남동쪽은 높이 100m 내외의 산지가 분포하고, 북쪽에는 넓고 평탄한 동진들이 있다. 동진들 서쪽에는 미호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며, 마을 앞을 흐르는 문주천은 서쪽을 지나 미호천으로 유입한다. 문주천은 동진들과 마을 간 경계를 이루며, 마을로 들어가려면 모든 집은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한다. 마을 입지는 북향으로 북서풍을 정면으로 받고, 햇볕도 북서 영향을 받는다.

[현황]

연동면의 중서 지역에 있는 문주리의 면적은 2.4㎢이다. 인구는 2020년 8월 기준 65가구에 총 121명이다.

마을 앞의 동진들에서는 벼농사를 짓고, 비닐하우스에서는 채소와 수박 등을 재배한다. 교통은 마을 서쪽의 미호천을 따라 세종특별자치시와 오송읍을 연결하는 세종오송로가 지나간다.

문주리아산이씨가 1500년 중반부터 살기 시작한 곳이다. 선조의 묘소 아래에 관수정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였지만 현재는 제단을 만들어 아산이씨 시제를 지내는 터만 남아 있다. 마을 남쪽에 있는 산제당에서는 10월 초에 마을의 안녕과 화평을 기원하는 산제를 지냈다. 산제당은 현재 소실되었다. 마을에서는 예전에 샘물을 중요하게 여겨서 정월 보름밤에 음식을 차려 놓고 몸을 깨끗이 한 나이 든 여자가 샘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10.07 현행화 인구는 2020년 8월 기준 65가구에 총 12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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