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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368
한자 日帝强占期
영어공식명칭 Korea under Japanese Rule Time
이칭/별칭 일제식민지시대,일제통치시대,왜정시대,일정시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윤윤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10년 8월 29일~1945년 8월 15일 - 일제강점기

[정의]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세종 지역의 역사.

[무단 통치기의 세종]

조선총독부는 토지조사사업과 지방의 재정 안정화를 위하여 1914년 군·면 통폐합을 실시하였다. 전의군연기군에 병합되고 세종 지역은 연기군 동면·서면·남면·북면·금남면·전의면·전동면의 7개 면, 공주군 장기면·의당면·반포면, 충청북도 청주군 강외면·부용면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조치원역이 개통되어 급격히 성장한 조치원리가 1917년 지정면으로 승격, 조치원면이 되었다.

일제는 조치원역부강역 등 철도 교통과 연결되는 공주·청주 간 도로를 정비하기 시작하였다. 식량과 원료를 일본으로 수송하고 일본 상품을 판매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교통이 편리해지고 상권이 형성되자 일본인 이주자가 늘었다. 조치원 헌병분견소, 경찰주재소, 조선식산은행 조치원지점 등이 생겨났다. 일본인들은 조치원청년회, 곡물상조합, 운수창고주식회사 등을 창립하여 세종 지역 경제를 장악하고 민족 자본을 잠식할 토대를 마련하였다. 일제는 또한 제1차 조선교육령에 의하여 연기공립보통학교, 전의공립보통학교 등을 설립하고 초보적인 식민지 교육을 실시하였다.

1918년 식민 정책에 항쟁하는 연기청년회가 조직되었다. 1919년 3·1 운동은 연기청년회의 중심이 되어 3월 13일 전의 시장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4월 20일까지 이어졌다. 각 면에서 활발히 전개된 만세운동과 횃불시위는 당시 세종 지역의 반일감정과 민족주의 사상이 고조되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문화 통치기의 세종]

일제강점기 세종 지역은 근대적 형태의 일본인 회사들과 금융조합이 생겨났다. 1921년 조치원금융조합, 1922년 전의금융조합, 1927년 부강금융조합이 창립되었다. 1922년에는 조영토지주식회사와 백정제사공장이 설립되었다. 1927년에는 산일제사공장, 1928년에는 조선물산주식회사가 각각 설립되었다.

또한 1923년 미호천 개수공사와 1924년 조천 개수공사를 착수하여 산미증산 계획을 도모하였다.

한편으로 1923년 신대 야학강습소, 1924년 신흥강습소·오성의숙·봉명의숙, 1928년 외천 노동야학 등 사립교육기관이 개설되어 민족교육에 힘썼다.

일본인 자본가와 교사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는 노동운동과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1921년 6월 민족 차별에 반대하여 조치원역 화물운송 인부들이 동맹파업을 하였다. 1927년 4월 장기면에서는 농민 100여 명이 참가한 장기면 노동협성회 지회를 조직하였다. 1927년 10월 조치원공립농업보습학교 학생들은 일본인 교사를 배척하며 동맹휴학을 하였다.

[민족 말살 통치기의 세종]

1931년 4월 면제 개정에 의하여 조치원면이 조치원읍으로 승격되었고, 연기군은 1읍 6면이 되었다. 이후 1940년 7월 조치원읍에 서면의 4개 리를 편입하고 마을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쳤다.

일본은 민족 말살 통치 수단으로 조치원읍 침산리에 신사를 세워 신사참배를 강요하였으며, 단군을 숭상하고 신사참배를 전면 거부하는 금강대도를 탄압하였다. 1942년에는 민족 사상을 고취하는 연기청년회가 일제 경찰의 탄압으로 활동이 중지되었다.

일본인은 전쟁 무기의 원료를 공급하기 위하여 부강에 1931년 100만 평 규모의 금광·은광 광업권, 1936년 텅스텐 광업권을 설정하였다. 1930년대 초반에는 전동면에도 광업권을 설정하였다. 1937년 청람리에서는 남한 최초의 니켈 광산이 발견되어 광업이 성행하게 되었다.

당시 세종 지역의 상권과 토지는 일본인과 한국인 몇 명의 지주가 장악하였다. 이에 백정제사공장 노동자들이 1935년 2월과 3월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동맹파업을 하였다. 또한 일제 말기 세종 지역에서 강제 징용·징발된 조선인은 일본과 만주 등지의 탄광, 광산 등 열악한 상황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

[일제 강점기 세종의 성격]

일제강점기의 세종 지역은 경부선이 개통되고 도로망이 정비되면서 조치원과 부강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신흥 도시로서 물산 집산지가 된 조치원은 근대적 자본을 지닌 일본인 상업가와 일본인들이 정착해서 민족 자본을 약탈하는 실정이었다. 조선인들은 일제가 비호하는 일본인 회사들, 식민지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기관과 경쟁을 치열하게 하면서 사회적·민족적 차별과 억압을 겪어야만 하였다. 세종 지역 조선인들은 자구책으로 사회 노동운동과 항일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며 일제강점기를 견디어 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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