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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394
한자 安珦肖像
영어공식명칭 Portrait of An Hya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연수원길 103[금흥동 110-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고려시대 - 안향 초상화 제작
현 소장처 안향 초상 - 충청남도 공주시 연수원길 103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원소재지 합호서원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합강 1리 순흥안씨 동족마을지도보기
성격 서화류
소유자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관리자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합강리 합호서원에 소장되어 있던 고려시대 주자학자 안향의 영정.

[개설]

고려시대 문신 안향(安珦)[1243~1306]의 초상화로,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합강리에 위치한 합호서원(合湖書院)에 위패와 함께 모셔져 있었다.

초상은 현재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에서 소장 중이다.

[안향의 생애]

안향은 고려시대 명신이자 학자이다. 호는 매헌(晦軒), 시호는 문성(文成), 본관은 순흥이다. 이름인 향(珦)은 조선 문종(文宗)의 이름자와 같았으므로 그의 이름을 초명(初名)이었던 유(裕)로 바꿔 불렀다.

1286년(충렬왕 12) 왕을 따라 원나라에 건너가 연경에서 『주자전서(朱子全書)』를 보고 유학의 정통이라 하여 손수 그 책을 베껴 쓰고, 또 공자와 주자의 화상을 그려 가지고 돌아와서 주자학을 연구하였다.

또 학교가 날로 쇠퇴하여 감을 우려하고 유학 진흥을 위하여 장학기금으로 6품 이상은 은 1근씩, 7품 이하는 포를 내게 하여 이를 양현고에 귀속시키고 그 이식(利息)[이자]으로 학교를 운영하게 하는 한편 박사 김문정(金文鼎) 등을 중국에 보내 공자와 그 제자들이 초상을 그리고 제기·악기와 경서 등을 구해 오게 하는 등 고려 말기 유학 진흥에 큰 공적을 남겼다.

주자를 숭배하여 그의 초상을 항상 벽에 걸어 두고, 주자의 호인 매암(晦庵)의 ‘晦’자를 따서 스스로 호를 매헌(晦軒)이라고까지 할 정도였다.

이것은 주자의 저서를 보고 거기에 심취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통 안향을 우리나라에 맨 처음 주자학을 받아들인 최초의 주자학도로 보고 있다.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순흥 백운동에 안향의 사묘(祠廟)[사당이나 사우를 높여 이르는 말]를 세우고 서원을 만드니 이것이 우리나라 서원의 시초가 되었다.

[형태 및 구성]

합호서원안향 초상은 주세붕이 순흥 백운동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영주 소수서원에 보존되어 있는 국보 제111호 안향 영정의 이모본(移模本)[원본을 본떠서 새로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화폭 상단의 안향 아들 안우기(安于器)가 쓴 찬문은 보이지 않지만 형태나 화법이 동일하다.

이모의 시기는 19세기로 추정되며, 비단에 채색하였고, 크기는 92×56㎝이다.

모사본은 상하 이분되어 상부 공간에는 찬문을 쓰고 화상은 화면의 하반부를 점유하고 있다.

인물은 홍포에 낮은 평정건(平頂巾)을 쓰고 있으며, 흉부까지 내려오는 반신상이다.

[소장유래]

영정이 보존되어 있던 합호서원이 위치한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합강 1리는 안향의 후손인 순흥안씨의 동족마을이다.

합강리 순흥안씨가 이곳으로 입향한 것은 1600년대 초반으로, 안곤(安鵾)이 합강리예안김씨와 혼인하면서 처가로 이거하여 정착하였다. 안곤은 입향 후 집에 안향의 영정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현손 안경정(安景精)과 안경상(安景祥) 형제 등이 힘을 모아 1716년(숙종 42)에 ‘합호사(合湖祠)’라는 영당을 지어 안향의 영정을 이안하여 봉안하였다 한다.

그후 1843년(헌종 9)에 후손과 연기 유림들이 합호서원을 창건하고 영정을 봉안하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1931년 후손 안배호(安培鎬) 등이 복설을 협의하여 1939년 현 상태로 재건되고 1949년에는 연기유림들이 성균관에 통문을 보내어 사우를 서원으로 승격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때는 안향만을 독향(獨享)[사당이나 서원에서 한 사람만의 신주를 모셔 두고 제향하는 일]하였고, 이곳에 안향의 영정이 봉안되어 왔다.

창건 후 여러 차례의 중수가 이루어졌다. 창건과 중수 기록이 1952년 『합호서원지(合湖書院誌)』로 발간되어 창건통문, 중수통문, 중건개기축문, 중건상량문, 합호사상량문 등이 전한다.

[의의와 평가]

안향이 숭경(崇敬)[높여서 존경하고 사모함]의 대상이 된 만큼 그의 초상화는 소수서원 이외에도 전국 도처에서 후손 및 유림에 의하여 분향·예배되어 왔다.

안향 초상은 순흥의 대룡산영당(大龍山影堂), 춘천의 가산영당(佳山影堂), 재령의 송양사(松陽祠), 장단의 임강서원(臨江書院), 연기의 합호서원(合湖書院) 등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는 합호서원순흥안씨 종중에 전해지는 영정이 소수서원본과 형식 및 크기가 같은 본으로 전해지는 귀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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