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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413
한자 將軍永平寺木造羅漢像-腹藏遺物一括
이칭/별칭 세종 영평사 목조나한상 및 복장유물 일괄
분야 역사/전통 시대,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영평사길 124[산학리 44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용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642년연표보기 - 장군 영평사 목조나한상 및 복장유물 일괄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14년 8월 20일연표보기 - 장군 영평사 목조나한상 및 복장유물 일괄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장군 영평사 목조나한상 및 복장유물 일괄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장처 영평사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영평사길 124[산학리 441]지도보기
원소재지 영평사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산학리 441
복장 유물 소장처 영평사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영평사길 124[산학리 441]지도보기
성격 나한상|복장유물
재질 나무
크기(높이) 92.5㎝
소유자 영평사
관리자 영평사
문화재 지정 번호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산학리 영평사에 있는 조선 후기 나무로 조성한 나한상과 복장유물.

[개설]

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로, 일체의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이루어 공양을 받을 만한 성자(聖子)를 뜻한다. 나한상은 16나한상과 여기에 항룡나한과 복호나한을 더한 18나한상, 500나한상이 주로 만들어진다. 사찰의 나한전, 응진전, 영산전 등에 봉안된다.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영평사에 소장된 나한상은 독존상이지만 본래 18나한 중 1구였을 공산이 크다. 나한상에서 발원문, 후령통, 다라니 등 복장유물이 출토되었다. 발원문의 내용을 통하여 1642년(인조 20) 상궁 최씨가 나라의 안녕과 주상,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시주하고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두툼한 코에 꽉 다문 입에서 인자하면서도 깊은 생각에 잠긴 나한의 표정이 느껴진다.

[형태]

목조나한상은 대좌를 포함한 전체 높이가 92.5㎝, 어깨 폭 33.7㎝, 무릎 폭 39.4㎝의 크기이다. 녹색의 장삼 위에 붉은색 바탕의 청색 격자문이 있는 가사를 입고 암석처럼 보이는 대좌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복호나한(伏虎羅漢)은 무릎 위에 익살맞은 표정의 호랑이를 두고 오른손으로 호랑이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왼손으로 호랑이 왼쪽 앞발을 잡고 있다. 하얀 얼굴에 녹색으로 눈썹과 수염, 붉은색으로 입술, 청색으로 민머리에 채색하여 생동감을 주었다.

복장유물은 머리 뒤쪽과 등 뒤쪽 두 군데의 복장공에서 출토되었다. 먼저 머리 뒤쪽에서 비단에 주사로 쓴 발원문과 녹색 명주천, 다라니가 발견되었다. 등 뒤쪽에서는 한지에 먹으로 쓴 발원문과 후령통, 다라니 일부가 수습되었다. 머리에서 발견된 주서 발원문에는 우순풍조(雨順風調)라 적혀 있고, 등에서 발견된 묵서 발원문에는 풍조우순(風調雨順)라 다르게 적혀 있는 것 외에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한지 묵서 발원문에는 불법승보(不法僧寶)라는 낙관이 찍혀 있다. 발원문 내용을 통하여 영평사 목조나한상이 ‘崇禎十五年壬午九月’, 즉 1642년(인조 20)에 상궁 최씨의 발원으로 조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녹색 명주천에는 정해년(丁亥年), 즉 1587년생 상궁 문씨가 함께 시주한 사실도 기록되어 있다. 후령통은 황초폭자에 싸여 출토되었다.

[특징]

목조나한상은 18나한상 중 1구로 여겨지며, 대좌까지 포함하여 92.5㎝의 중형 크기이다. 16나한상에 항룡나한과 복호나한을 합쳐 18나한으로 모시는 것으로 보아 본래 18나한상 중 1구인 복호나한상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나무로 만들고 그 위에 채색을 하였다. 생각에 잠긴 얼굴과 호랑이를 쓰다듬는 손 등 조각이 섬세하다. 녹색과 청색, 붉은 색이 조화된 채색도 주목된다. 특히 녹색, 청색, 붉은색을 적절하게 잘 안배하였다. 고양이만 한 크기의 호랑이는 눈은 부릅뜨고 있지만 익살맞은 표정으로 친근감을 준다

머리와 등 뒤 복장공에서 출토된 발원문과 후령통, 다라니는 조선 후기 복장의식 설행의 좋은 예를 보여 준다. 특히 머리와 등에서 모두 발견된 발원문을 통하여 영평사 목조나한상의 제작 연대와 시주자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큰 특징이다.

[의의와 평가]

나한상은 비록 독존상이 전하지만 제작 연대가 정확하며 호랑이를 굴복시키는 자세, 가사와 장삼의 복식 표현, 암석 위에 앉아 있는 모습 등 17세기에 유행한 나한상의 시기적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복장유물에서 발견된 발원문을 통하여서는 왕실와 연관 있는 상궁 최씨와 문씨 등이 시주하였다는 역사적 사실도 확인되어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아 2014년 8월 20일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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