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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424
한자 松院里遺蹟
이칭/별칭 연기 송원리 유적,한솔동 백제고분 역사공원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
시대 선사/선사,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백영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청동기시대~조선시대 - 백제 횡혈식석실분·석곽묘·토광묘·주구토광묘·옹관묘, 고려시대 석곽묘, 고려~조선시대 토광묘·주거지·숯가마 등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6~2009년 -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사업 시행에 앞서 백제시대의 대규모 횡혈식석실묘와 석곽묘 발견
소재지 한솔동 백제고분 역사공원 - 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 일원지도보기
성격 고분
소유자 국유
관리자 세종특별자치시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에 있는 백제의 주거지 유적.

[개설]

송원리 유적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에서 삼국시대 백제의 대규모 횡혈식석실묘와 석곽묘가 발견된 유적이다.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사업 시행에 앞서 발견된 유적이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백제 횡혈식석실분·석곽묘·토광묘·주구토광묘·옹관묘, 고려시대 석곽묘, 고려~조선시대 토광묘·주거지·숯가마 등이 확인되었다. 발굴조사는 전체 사업대상지 중 21·22·23지점에 해당되며, 조사지역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명을 따라 송원리 유적으로 명명되었다.

청동기시대 유구는 위석식 노지와 초석이 갖추어진 전형적인 가락동식 주거지로, 정상부 평탄면에 일렬로 분포하는 특징을 보이는 등 서울 가락동 유형의 세장방형(細長方形)[가늘고 긴 직사각형 모양] 주거지로 일관되게 확인된다. 주거지의 분포 범위가 넓어 이 시기의 취락 배치 양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백제 분묘군은 석곽묘, 석실분이 주구토광묘와 함께 확인되고 있다. 백제의 영향권에 접어든 단계에서 묘제의 조영 지역이 점차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능선 최상부의 입지가 좋은 곳에는 횡혈식석실분이 위치하고 있어 위계에 따라 입지를 달리하여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횡혈식석실분의 경우 평면 방형의 묘실에 궁륭상의 천장 구조, 경사식 묘도, 연도 입구 상부 석축의 존재 등에서 특징적인 모습을 보인다.

고려~조선시대 유적은 주로 석곽묘와 토광묘가 200기 이상 다량 확인되었으며, 주거지와 숯가마 등도 확인되고 있어 이 지역의 역사가 백제시대 이후로 꾸준하게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저습 9지점은 충적세 단구Ⅰ면의 자연제방으로 넓게 발달되어 있어 선사시대 이래 인간의 활동이 이루어진 지역으로 추정되었다. 조사 결과 전역에 사질층과 매립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유구 및 유물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 유물]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토기[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二重口緣短斜線文土器)]와 간돌검[마제석검(磨製石劍)], 돌살촉[석촉(石鏃)] 등이 출토되었다.

백제 분묘에서는 아가리넓은긴목항아리[광구장경호(廣口長頸壺)]·그릇받침[기대(器臺)]·검은간토기[흑색마연토기(黑色磨硏土器)]·굽다리접시[고배(高杯)] 등 토기류와 발걸이[등자(鐙子)]·말띠고리[교구(鉸具)]·불명금동품(不明金銅品)·손칼[도자(刀子)]·긴칼[대도(大刀)]·쇠살촉[철촉(鐵鏃)] 등 철기류, 구슬과 곱구슬[곡옥(曲玉)] 등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일반적으로 백제 중앙의 횡혈식석실분에서는 철제 무기류가 출토되지 않은 점과 차이를 보인다.

[현황]

송원리 유적의 백제고분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보존유적으로 결정된 후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유적 일부에 한솔동 백제고분 역사공원을 조성하고 백제시대 횡혈식석실분 2기(석실분1호와 2호)는 발굴조사 후 과학적인 보존 처리를 완료하고 그 위에 보호각(지붕)을 세워 관람할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송원리 일대 재지세력은 기본적으로 주구토광묘 형태를 유지하다가 초기 횡혈식석실분을 수용하고 있다. 유물도 중앙 양식의 짧은굽다리접시[단각고배(短脚高杯)] 및 원통형그릇받침[통형기대(筒形器臺)]과 지역색 강한 고사리무늬[궐수문(蕨手紋)]의 네귀단지[사이호(四耳壺)], 납작바닥작은단지[평저소호(平底小壺)] 등이 부장되어 있는 등 두 문화가 접합되고 있다. 즉 재지세력의 유물 부장문화 전통을 유지한 상태에서 묘제(墓制)[묘에 대한 관습이나 제도] 도입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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