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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리 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425
한자 羅城里遺蹟
이칭/별칭 연기 나성리 유적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 일원지도보기
시대 선사/선사,고대/고대
집필자 백영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백제 한성기 - 백제시대 취락 유적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0~2013년 -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시행에 앞서 유적 발견
성격 유물산포지
양식 고분
소유자 국유
관리자 세종특별자치시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에 있는 원삼국시대~백제시대 유적.

[개설]

나성리 유적금강의 북쪽에 형성된 충적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에 앞서 확인된 유적이다.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시행에 앞서 발굴된 유적이다. 발굴조사 결과 원삼국시대 널무덤[토광묘(土壙墓)], 삼국시대 백제 한성기의 구획저택[내부에 건물, 수혈 등 포함]과 구획유구, 주구건물, 방형구획유구, 망루, 수혈유구, 도로유구, 구상유구, 횡혈식 석실묘 등이 조사되었다.

나성리 유적은 가운데에 저지대를 두고 동쪽-남쪽-서쪽의 미고지(微高地)[가는 모래가 두껍게 퇴적된 지형]를 따라 도로가 연결되며, 도로 주변으로 구획저택과 주구건물 등 취락이 분포한다. 북서쪽의 도로 끝부분에 방형구획유구가 위치하며, 전체 유적의 동쪽 구릉에는 나성토성이 축조되었다.

구획저택은 기본적으로 외곽에 구를 설치하여 일정한 공간을 마련하고 내부에 주 건물지와 부속 건물지, 수혈유구, 우물 등이 배치되어 있는 형태이다. 외곽에 모줄임네모꼴[말각방형(抹角方形)]의 구를 설치하여 50×30m 규모의 구획을 만들고, 다시 거의 절반을 나누어 북쪽 부분에 중심 건물과 부속 건물을 배치하였다.

주구건물은 1×1칸 규모의 지상식 건물 주변을 구로 감싼 형태이며, 유적의 서쪽 미고지에 위치한다. 주구건물은 단독으로 조성된 형태와 외곽 구를 일부 공유하여 함께 조성된 양상이 확인된다. 주구건물들은 구획저택 구역에서 이어지는 도로의 측구 주변과 측구에서 갈라지는 구 주변에 접하여 배치되어 있으며, 구와 주구건물의 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방형구획유구는 조사 지역의 북서쪽 가장자리에 형성된 미고지에 위치한다. 구획저택이나 주구 건물이 분포하는 구역으로부터 위치가 독립되어 있으며, 의도된 유구 배치의 계획성을 엿볼 수 있다.

도로 유구는 나성리 유적 내 미고지 상의 가장자리를 따라 남-북 방향으로 연결되는 양상을 보인다. 일부는 동-서 방향, 북동-남서 방향으로 연결되는 것도 확인된다. 도로 유구에는 다수의 수레바퀴 흔적도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

백제시대 요고(腰鼓)[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된 타악기로, 장구보다 훨씬 작음]가 발굴되었다.

[현황]

나성리 유적은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 2-4생활권 개발로 인하여 사라졌다.

[의의와 평가]

5세기 초반 무렵 이 지역은 외부의 이주집단에 의해 재지세력의 분묘 공간이 취락공간으로 탈바꿈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주집단은 금강변 저지대의 지형 조건을 극복하기 위하여 구획 구 개념을 차용하여 구획저택과 주구건물 등을 조성하였다. 또한 무덤은 기존 재지세력의 분묘인 널무덤과 주구토광묘(周溝土壙墓)[주변에 도랑을 파서 돌린 널무덤], 돌덧널무덤[석곽묘(石棺墓)]과는 다른 굴식[횡혈식(橫穴式)] 석실을 주 묘제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나성리 유적의 대규모 취락은 백제 중앙의 유력 집단이 이주하여 조성한 유적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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