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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433
한자 金宗瑞將軍墓
영어공식명칭 Tomb of General Gim Jongseo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대교리 산45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강경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383년 - 김종서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453년(단종 1) - 김종서 사망
문화재 지정 일시 1977년 01월 06일연표보기 - 김종서 장군 묘 충청남도 기념물 제16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12년 12월 31일연표보기 - 김종서 장군 묘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제2호 지정
문화재 해지 일시 2012년 07월 01일연표보기 - 김종서 장군 묘 충청남도 기념물 제16호 지정 해지
현 소재지 김종서 장군 묘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대교리 산 45 지도보기
원소재지 김종서 장군 묘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대교리 산 45
성격 능묘
양식 묘역
관련 인물 김종서
소유자 세종특별자치시
관리자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 지정 번호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제2호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대교리에 있는 조선 전기 장군 김종서의 묘소.

[개설]

김종서는 조선 단종 대의 충신으로,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서 출생하였다. 그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지만 계유정란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후에 김종서의 충절이 알려져 1734년(영조 22) 관직이 원래대로 회복되고 명정을 받았다.

묘소 전면에는 비석 2기와 상석, 석주가 있다. 비석 1기는 1736년(영조 24), 다른 비는 1963년에 각각 세워졌다.

[위치]

김종서 장군 묘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약 2.5㎞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김종서의 묘소가 장기면 대교리에 자리 잡게 된 것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전설이 전하여진다.

김종서 장군에게는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말이 한 마리 있었다. 1453년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죽여 능지처참하자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말이 갑자기 뛰어들어 김종서의 다리 하나를 물고 한양을 뛰쳐나와 김종서의 고향인 공주까지 쉬지 않고 달려와서 죽었다고 한다.

이때 말이 물고 온 한쪽 다리를 이곳에 묻었다. 그 후로 마을 이름을 ‘한다리’라고 부르게 되었고, 나중에 ‘대교리(大橋里)’가 되었다고 한다.

김종서의 묘역이 위치한 마을 입구에는 1987년에 김상홍(金相洪)이 비문을 짓고 김영기(金榮其)가 글씨를 쓴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변천]

묘소 전면에는 비석 2기와 상석, 석주가 있다. 비석 1기는 1736년(영조 24), 다른 비는 1963년에 세워졌다.

1977년 1월 6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되어 관리되다가 2012년 세종시 출범에 따라 2012년 12월 31일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제2호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묘소 전면에는 비석이 2기 건립되어 있다.

원래의 구비는 장군의 위업에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작은 높이인 94㎝의 호패형으로, 김종서가 복관된 지 2년 후인 1736년(영조 24)에 공주판관 이익진(李翼鎭)과 지방 유생들에 의하여 세워졌다.

다른 하나는 1963년에 새로 세워진 것으로, 오석(烏石)[흑요암을 말하는 것으로, 유문암질 또는 안산암질 등의 마그마가 급격히 식으면서 굳어져 이루어진 화산암]의 비신(碑身)[비문을 새긴 비석의 몸체]에 옥개(屋蓋)[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는 돌]를 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뒷면에는 유적과 김종서의 행적을 자세하게 적혀 있다.

[금석문]

1736년(영조 24)에 세워진 비석의 전면에는 조선좌의정절재김선생종서지묘(朝鮮左議政節齋金先生宗瑞之墓)라 하여 김종서의 묘소임을 기록하고, 뒷면에는 이곳에 비를 건립한 사연에 대하여 적고 있다.

바로 이 비석에 공[김종서]의 선대 묘소가 있는 곳이고, 당시까지 현지 주민들에 의해 공의 묘소라는 사실이 전해 내려온 데 근거하여 묘비를 이곳에 세운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963년에 세워진 비석의 전면에는 대광보국숭록대부좌의정 익충익호절재 순천김공종서지묘(大匡輔國崇祿大夫左議政 謚忠翼號節齋 順天金公宗瑞之墓)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황]

김종서의 묘역이 위치한 마을 입구에는 1987년 김상홍(金相洪)이 비문을 짓고 김영기(金榮其)가 글씨를 써서 세운 신도비가 있으며, 김종서 묘역 입구에는 김종서와 김종서 아들 김승규(金承珪)의 효자 정려가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전기의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김종서 장군에 대하여 자세한 역사적 고증은 물론 더 많은 사람에게 인물의 업적과 일대기를 알릴 수 있는 교육적인 홍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