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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540
한자 安東權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윤윤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400년대 - 권은 출생 추정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400년대 - 권은 사망 추정
입향 시기/일시 1400년대 - 권은 입향 추정
분관|분종 시기/일시 1200년대 - 권수평(1180년 경~1250년) 추밀공파
본관 안동권씨 본관 - 경상북도 안동시
입향지 안동권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안동권씨 집성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 지도보기|청송리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안동권씨 세장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 상로장 지도보기
성씨 시조 권행
입향 시조 권은

[정의]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은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권행(權幸)을 시조로 하고 권은(權訔)을 입향조로 하는 안동권씨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노장리청송리 등을 중심으로 번성하여 지금까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는 전동 지역의 대표 성씨이자 유력 성씨이다.

[연원]

안동권씨의 시조는 권행이지만 원래 이름은 김행(金幸)이며, 신라의 왕성(王城) 김씨이다.

김행은 고려 태조가 고창(古昌)[현 경상북도 안동]에서 후백제 견훤을 무찌르는 데 공을 세웠다. 이에 태조는 김행에게 권씨 성을 하사하고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시켰다.

이후 후손들이 안동을 본관(本貫)으로 삼고 10세손에 이르러 15개 파로 갈라져 세계(世系)[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계통]를 이어 오고 있다.

[입향 경위]

전동면 안동권씨 입향조는 권은이며, 권은은 권수평(權守平)[1180년 경~1250]을 파조로 하는 안동권씨 추밀공파(樞密公派) 10세손이다.

권은은 단종 때 영의정을 지낸 황보인(皇甫仁)의 사위로, 1453년 계유정난으로 일가가 멸문 위기에 처하자 선영(先塋)[조상의 무덤 또는 조상 무덤 근처의 땅]이 있는 경기도 용인으로 피신하였지만 1463년에 발각되어 양주에 10년간 부처(付處)[벼슬아치에게 어느 곳을 지정하여 머물러 있게 하던 형벌] 되었다가 방면되었다. 이후 후손들이 노장리에 살게 되었다 한다.

후손 권주(權柱)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고, 임진왜란 당시 백미 800석을 향소(餉所)[조선 후기에 군수품 조달과 관리를 하던 곳]에 헌납하였다.

이후 권주의 아들과 손자 대에 이르러 노장리 상로장청송리에 뿌리를 내려 전동 지역에 안동권씨 추밀공파를 형성하였다.

[현황]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의 성』에는 안동권씨노장리에 28가구, 청송리에 31가구가 거주하는 동족마을로 기록하고 있다.

1988년 전동면 노장리청송리에 거주하는 안동권씨는 70가구로 확인된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1988년 연기군안동권씨는 255가구 1,071명이다.

2015년 세종특별자치시의 안동권씨는 2,560명으로 남자 1,307명, 여자 1,253명이다.

[관련 유적]

전동면에는 안동권씨와 관련된 지명이 있다. 권주가 임진왜란 당시 말을 타고 훈련하던 장소를 말바탕, 치마대라 하고 산에 막을 치고 피란하였다 하여 산막골이라 불렀다 한다.

또한 권주가 왜군이 침입할 당시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갈대밭에 숨어 참화(慘禍)[비참하고 끔찍한 재난이나 변고]를 피하였는데 참화를 피한 갈대밭을 노장(蘆長)이라 불러 노장리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한다.

전동면 노장리 상로장 뒷산 일대가 안동권씨 묘역으로 조성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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