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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564
한자 晉陽河氏
이칭/별칭 진주하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윤윤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425년(세종 7)연표보기 - 하왕 사망
입향 시기/일시 1400년대 전후 - 하왕 생몰년으로 추정
본관 진양하씨 - 경상남도 진주시
입향지 진양하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연기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진양하씨 세거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연기리 지도보기|누리리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진양하씨 묘소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수산리 산109-2 지도보기
성씨 시조 하진
입향 시조 하왕

[정의]

하진을 시조로 하고 하왕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하진(河珍)을 시조로 하고 하왕(河瀇)[?~1425]을 입향조로 하는 진양하씨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연기리누리리에 입향한 이래 600여 년 동안을 살아오고 있다.

[연원]

진양하씨는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성씨라 하나 확실한 연원은 알 수 없다. 고려시대에 와서 하공진(河拱辰)을 시조로 하는 시랑공파(侍郎公派), 하진을 시조로 하는 사직공파(司直公派), 하성(河成)을 시조로 하는 단계공파(丹溪公派)로 분파되었다. 이후 충렬왕 때 하즙(河楫)은 선대가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에 세거하여 왔으므로 본관(本貫)을 진양이라 삼았다 한다.

[입향 경위]

연기면 연기리 진양하씨 사직공파 입향조는 하왕으로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지냈다. 하왕의 아버지 하자종(河自宗)[1350~1433]이 청주목사(淸州牧使)로 부임하게 되어 하왕이 이웃한 경치 좋은 연기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으로 보인다. 후손으로는 목천현감(木川縣監)을 지낸 하왕의 아들 하정수(河程秀), 봉산군수(鳳山郡守)를 지낸 하정발(河程拔)과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를 지낸 하옥(河沃) 등이 있다.

[현황]

『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연기 지역의 진양하씨는 토성(土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진양하씨연기면 연기리에 1970년대 10가구, 2019년 5월 4가구가 거주한 것으로 확인된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기군진양하씨는 2000년에는 15가구 52명, 세종특별자치시의 진양하씨는 2015년에는 136명인 것으로 확인된다.

[관련 유적]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으로 남면 월산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누리리]에 있던 진양하씨의 묘역과 종산(宗山)이 편입되어 연기면 수산리 산109-2번지로 옮겨 조성되었고 매년 음력 9월 9일에 시향(時享)을 지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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