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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583
한자 和順崔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임선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400년대 후반 - 최은이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암리에 입향
본관 화순최씨 - 전라남도 화순
입향지 화순최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암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화순최씨 세거지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암리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화순최씨 참판공 재실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암리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효자 최덕렬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도암리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최기수 묘소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금천리 재동마을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열녀 경주경씨·완산이씨 쌍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성덕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최세기
입향 시조 최은

[정의]

최세기를 시조로 하고 최은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세종특별자치시의 화순최씨는 부정공파인 직장공 최은이 1400년대 후반에 금남면 도암리에 입향하였다. 화순최씨도암리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으며 성덕리, 신촌리, 금천리와 인근의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봉암리 등에도 거주하고 있다.

[연원]

화순최씨의 시조 최세기(崔世基)는 고려 때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화순군에 봉하여짐으로써 화순을 관향(貫鄕)[시조(始祖)가 난 곳]으로 삼았다. 화순최씨는 최세기와 함께 몽골군의 침입 때 공(功)을 세우고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최부(崔傅)를 함께 시조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상계가 실전(失傳)[묘지나 고적 따위에 관련되어 전하여 오던 사실을 알 수 없게 됨]되어 서북면도감판관(西北面都監判官)을 지낸 최언(崔堰)을 기세조로 세계(世系)를 이어 오고 있다.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낸 최윤의(崔允儀)를 기세조로 삼는 계통도 있다.

최언의 5세손에 이르러 감찰공(監察公) 최덕윤(崔德潤), 밀양공(密陽公) 최자해(崔自海), 부정공(副正公) 최자하(崔自河), 문정공(文貞公) 최자강(崔自江), 대사성(大司成) 최자빈(崔自濱)의 5형제파가 분파되었다. 그 후 시정공파(寺正公派), 유수공파(留守公派),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 도사공파(都事公派), 승지공파(承旨公派), 첨사공파(僉使公派), 지평공파(持平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등으로 분파되었다.

[입향 경위]

금남면 도암리 화순최씨 입향조는 부정공파(副正公派)인 직장공 최은(崔垠)[1400년대 후반]이다. 최은의 아버지는 도승지(都丞旨)를 지낸 최중온(崔重溫)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최은은 성종조에 상서원 직장(尙書院直長)을 지냈는데 연산군 시절 나라에 도가 행하여지지 않으면 벼슬을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옛 훈계에 따라 벼슬을 버리고 회덕현(懷德縣) 목현(木峴)으로 낙향하여 살았다. 말년에는 계룡산 북쪽 정기 어린 장군봉 산하에 비옥한 들과 수려한 계룡천이 유유히 굽어 흐르고 있음을 보고 모인당(慕忍堂)을 세워 수도(修道)와 강학(講學)을 하면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계룡산 장군봉 밑에 터를 잡은 연유에 대해 후손들은 도암리 뒤편의 산세가 화순최씨의 ‘최(崔)’ 자와 닮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현황]

금남면 도암리화순최씨의 집성촌으로 화순최씨가 주민의 60%에 달하며 화순최씨성덕리, 신촌리, 금천리와 인근 공주시 반포면 봉암리 등에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화순최씨의 주요 인물로는 인조의 공주 파천 때 인조를 도와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으며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장예원사평(掌隸員司評)을 지낸 최기수(崔杞秀)가 있다. 최기수의 행적은 공주의 쌍수성남비문(雙樹城南碑文)과 『공산읍지』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관련 유적]

입향조 최은의 묘소는 공주시 반포면 내도동 후록[묘산도(墓山圖)에는 공주시 반포면 도암리]에 있다. 최은과 최은의 부친인 도승지 최중온, 조부인 참판공 최한정(崔漢禎)[1427~1486], 최은의 아들인 최세계(崔世溪)의 제사를 모시는 화순최씨 참판공 재실은 도암리에 있다. 또한 도암리에는 효자 최덕렬(崔德烈)[1763~1835]의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가 있다. 금천리 재동마을에는 최기수의 묘와 묘갈이 있으며 성덕리에는 최기수의 장손 부인 열녀 최석진(崔錫晋)의 처 경주경씨(慶州慶氏)와 방계 증손부 완산이씨의 쌍정려가 있었던 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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