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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605
한자 南平曺氏愛重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4년(선조 7)연표보기 - 남평조씨 애중 출생
몰년 시기/일시 1645년(인조 23)연표보기 - 남평조씨 애중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36년(인조 14) - 남평조씨 애중 병자일기 기록 시작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40년(인조 18) - 남평조씨 애중 병자일기 기록 마무리
거주|이주지 남평조씨 애중 거주지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성강리 지도보기
묘소 남평조씨 애중 묘소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봉곡리 12-3
성격 문인
성별
본관 남평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에 묘를 쓴 남이웅의 부인이자 병자호란 당시 한글 일기인 『남평조씨 병자일기』를 쓴 인물.

[개설]

남평조씨(南平曺氏) 조애중(曺愛重)[1574~1645]은 인조 때 좌의정을 지낸 남이웅(南以雄)[1575~1648]의 부인으로, 병자호란이 벌어지자 피난을 떠나며 당시 겪은 일을 상세하게 한글 일기로 남겼다.

[가계]

남평조씨 조애중의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조경남(曺慶男)이고 어머니는 남원윤씨로 윤강원(尹剛元)의 넷째 딸이다. 외할아버지인 윤강원은 중종과 명종 연간에 판예조정랑, 정원(正言) 등을 지냈고 외삼촌인 윤진(尹軫)은 의병장으로 정유재란 때 입암산성(笠巖山城)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남편 남이웅의 본관(本貫)은 의령이며 자는 적만(敵萬), 호는 시북(市北), 시호(諡號)는 문정(文貞)이다.

[활동 사항]

남평조씨 조애중은 인조 때 좌의정을 지낸 남이웅의 부인이다. 조애중은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 임진왜란을 겪었고 60대 중반 무렵에는 병자호란을 겪으며 전란의 시기를 살았다. 그렇게 고통을 겪는 상황에서도 한글 일기를 써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1640년(인조 18) 8월까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쓴 『남평조씨 병자일기』를 후세에 남기게 되었다. 일기에서 드러나는 조애중의 성품은 온화하고 다정다감하다. 가족은 물론이고 먼 지방에서 사는 노비들의 생활까지 염려하며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일찍 죽은 자식을 생각하고 선양(瀋陽)으로 떠난 남편 걱정에 늘 노심초사하던 여성이었다. 남편 남이웅의 친구인 조경(趙絅)은 남이웅의 묘비명에서 조애중에 대해 “가르침을 받들어 부모님에게 효성스럽고 남편에게 공손하였으며 움직임에 반드시 예법에 맞아서 집안이 항상 엄숙하였다. 죽음에 이르러서는 서자와 첩자들도 모두 친어머니의 상(喪)을 당한 듯이 슬퍼 곡하였으니 그 어짊을 가히 알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편으로는 매우 치밀하고 세심한 성격으로 4년여의 시간 동안 거의 끊임없이 일기를 기록하였다. 병자호란으로 황급히 피난하던 중에도, 훗날 서울로 돌아온 후 집을 찾아온 손님들 접대에 정신없이 바쁠 때에도 병상에 누워 있던 며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일기의 내용에 등장하는 정치적 사건에 관한 기록은 『인조실록』과 비교해 보아도 완벽하게 일치한다. 날씨에 대해서도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맑았다 흐려지며 비가 왔다는 식으로 적고 천둥·번개·일식·월식 등도 모두 기록하였다. 조애중은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였다. 『남평조씨 병자일기』 속에는 꿈을 꾸고 해몽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대체로 좋은 방향으로 뜻풀이를 하려 하였다. 좋은 꿈은 꼭 기록하며 희망을 품고 나쁜 꿈은 “잡몽이다.” 또는 “꿈이 번잡하다.”라고만 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였다.

[저술 및 작품]

남평조씨 조애중『남평조씨 병자일기』를 남겼다.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1640년(인조 18) 8월까지 한글로 기록한 필사본 일기이다.

[묘소]

남평조씨 조애중의 묘소는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봉곡리에 남이웅과 합장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남이웅이 사패지(賜牌地)[임금이 내려 준 논밭]로 받은 땅이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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