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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675
한자 金漢鼎
영어공식명칭 Gim Hanjeong
이칭/별칭 중삼,구곡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철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57년(영조 33)연표보기 - 김한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76년(고종 13) -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으로 증직
몰년 시기/일시 1804년(순조 4)연표보기 - 김한정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22년 - 효자 김한정 정려 건립
출생지 김한정 출생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청라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효자 김한정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류리 102-2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강릉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가계]

김한정(金漢鼎)[1757~1804]의 자는 중삼(重三)이고 호는 구곡(龜谷)이다. 이곡 김천익의 16세손이고, 모암 김덕숭의 15세손이며, 기은 김오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김상문(金尙文)[1722~1789]이고, 어머니는 유덕룡의 딸 강릉유씨(江陵劉氏)[1726~1790]이다. 부인은 동래정씨이고, 아들은 김경희(金卿羲)[1794~1879]이다.

[활동 사항]

김한정이 19세 되던 해 부모가 모두 중병에 걸려 고생하자 부인과 함께 백방으로 약을 구해다 드렸다.

그렇게 여러 번에 걸쳐 살펴보니 아버지 병환에는 생지(生芝)가 효험이 있고 어머니 병환에는 생선[生魚]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집 뒷산에는 지초(芝草)를 심고 문밖 우물에는 물고기를 길러 20년을 하루 같이 섬기니 양친이 모두 70세를 넘겨 장수하셨다.

김한정은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는 여막(廬幕)[무덤 가까이에 지어 놓고 상제가 머무는 초막]을 짓고 3년 시묘를 한 후 장례를 치르는 효행을 보였다.

[상훈과 추모]

1876년 아들 김경희의 벼슬이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에 이르자 법전에 따라 김한정을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으로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높여 주던 일]하였다.

1887년(고종 24) 김한정의 효행을 고을 유림들이 조정에 고하여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동네에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를 명하였다.

현재 효자 김한정 정려는 1922년에 건립하여 1983년에 보수한 것으로,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9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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