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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685
한자 崔之喆妻全州李氏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철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59년(영조 35)연표보기 - 최지철 처 전주이씨 공주에서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79년(정조 3)연표보기 - 최지철 처 전주이씨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84년(정조 8) - 최지철 처 전주이씨 정려 받음
출생지 최지철 처 전주이씨 출생지 - 공주
사당|배향지 열녀 전주이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로 76[봉산리 산54-8] 봉산영당지도보기
성격 열녀
성별
본관 전주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개설]

전주이씨(全州李氏)[1759~1779]는 최지철(崔之喆)의 아내로, 혼인 1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장례를 치르고 5개월이 지난 후 태중에 남편의 유복자가 없음을 확인하고 자결한 열녀이다.

[가계]

최지철 처 전주이씨의 아버지는 이대형(李大亨)이다.

[활동 사항]

전주이씨는 이대형의 딸로, 11세 되던 해에 모친이 죽자 3년 시묘살이를 하여 효녀라는 칭송을 받았다. 19세 되던 1777년(정조 1)에 조치원 봉산리에 사는 강화 사람 최지철에게 출가하였지만 혼인한 지 1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남편 뒤를 따라 죽으려고 7일간 식음을 전폐하자 친정아버지가 울면서 “유복자가 있을지 모르니 몸을 천금같이 여기라.”라고 타일렀다. 전주이씨는 5개월이 지날 때까지 몸을 조심하며 살펴보았으나 태기가 없음을 확인하고 몰래 다락에 올라가 목을 매고 자결하였다. 나이 20세였다.

[상훈과 추모]

전주이씨의 열행(㤠行)[여자가 정절을 훌륭하게 지키는 행위]을 마을 유림들이 여러 번 관찰사에게 소(疏)[임금에게 올리던 글]를 올렸고, 임금이 열행을 전해 듣고 1784년(정조 8)에 열녀로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동네에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를 받아 봉산리 대로변에 건립하였다. 1974년 도로 개설로 인하여 현재 자리로 옮겼다. 열녀 전주이씨 정려는 연기군 향토유적 제20호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20호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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