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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730
한자 鄭元弼
영어공식명칭 Jeong Wonpil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정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4년연표보기 - 정원필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38년연표보기 - 정원필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6년연표보기 - 정원필에게 대통령 표창이 추서됨
출생지 정원필 출생지 -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 213[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정리 213]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정원필(鄭元弼)[1874~1938]은 옛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읍내리 전의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정원필은 1919년 3월 13일 옛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전의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만세운동을 주도한 이수욱(李秀郁)이 고종의 국장(國葬) 참례를 위하여 2월 26일 상경하여 3·1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3월 6일에 신정리로 돌아와 추경춘(秋敬春)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결의하였다. 3월 7일 밤에는 박성교(朴聖敎)의 집에서 동네 주민들이 회합을 갖고 3월 13일 전의 읍내 장날에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3월 8일에는 김병옥(金炳玉) 집에서 정원필(鄭元弼)을 비롯한 이장희(李章熙)·이광희(李光熙) 등과 회합을 갖고 역시 3월 13일 독립만세운동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시장 군중들에게 나누어 줄 태극기 약 150기(旗)를 자택에서 제작하였다.

이수욱정원필·박성교·김병옥 등은 3월 13일 오전 9시경 갈정리 고개에서 시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에게 독립만세를 부를 것과 다른 사람에게도 권유하여 참여하도록 부탁하였다. 또한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품속에 숨겨 두었다가 이수욱이 독립운동 연설을 할 때 일제히 태극기를 꺼내 흔들면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자고 당부하였다. 12시 40분경에 전의시장에 도착한 이수욱이 시장 군중 150여 명에게 독립운동 연설을 하고 독립운동 방법으로 대한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주장하였다. 사전 약속으로 집합한 이수욱·추경춘·윤자훈·윤자벽·윤상억·김재주·정원필·이장희·이광희·윤상원(尹相元) 등과 시장에서 참여한 이수양(李秀陽)·윤상은(尹相殷)·정상복(鄭相福)·이규영(李奎永)·이상건(李相健) 등은 윤자명(尹滋明)윤자벽으로부터 받아 미리 옷 속에 숨겨 두었던 태극기를 꺼내 들고 흔들면서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전의면 각처를 활보하는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정원필은 독립만세운동을 적극 주도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일제의 보안법 위반으로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정원필의 공적을 기리어 2006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追敍)[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줌]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공제96호)」(공주지방법원, 1919. 4. 9.)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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