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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913
한자 忠臣洪稙旌閭
분야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서정리 산85-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08년 -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4년 - 중수
문화재 지정 일시 2001년 05월 31일연표보기 - 연기군 향토유적 제2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14년 09월 30일연표보기 -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2호 지정
문화재 해지 일시 2014년 09월 30일연표보기 - 충신 홍직 정려 연기군 향토유적 제2호 지정 해지
현 소재지 충신 홍직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서정리 산85-2 지도보기
원소재지 충신 홍직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서정리 산85-2
성격 정려
양식 겹처마 맞배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남양홍씨 문중
관리자 남양홍씨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2호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서정리에 있는 홍직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개설]

충신 홍직 정려남양홍씨 홍직(洪稙)[1571~1637]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홍직의 자는 치경(稚卿)이고, 부친은 연기 지역 남양홍씨 입향조인 홍익청(洪翼淸)이다. 홍익청은 고려조 태사(太師) 홍은열(洪殷悅)의 후손으로, 기묘명현(己卯名賢)으로 이조판서를 증직받은 홍사부(洪士俯)의 손자이자 음직으로 군수를 지낸 홍이정(洪李靜)의 아들이다. 전의 지역에 세거하고 있던 거창신씨 신몽상(愼夢祥)의 딸과 혼인하고 그 인연으로 남양에서 전의로 옮겨 오게 되었다.

홍직은 1602년(선조 35) 무과에 장원하여 삼등(三登), 순안(順安), 문화(文化) 등 7개 고을의 현감을 지내면서 청백리로 명성이 높아 여러 번 포장을 받았다. 문화 등 4개 고을에서는 주민들이 송덕비를 세워 미덕을 칭송하였다고 한다. 문화현[현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에서는 고을 선비들이 충효사를 건립하여 제향하였다고 한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삼등[평안남도 강동군 지역]현령으로서 원수 장만(張晩)을 도와 1등 공신에 기록되었다. 1627년(인조 2) 정묘호란 때는 순안[평안남도 평원군 순안면]현감으로 있으면서 고을 병사들을 이끌고 적을 사로잡은 공을 세워 특별히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홍직은 홀로 문화현령으로 차출되어 관장으로서 호란에 출정하였다. 정방산성에 입성하여 맹렬하게 전투를 벌이던 중 소관 박종산 등이 다른 곳으로 퇴진할 것을 종용하자 홍직은 “흩어진 병사들을 수습하여 마땅히 한 골목이라도 지킬 것이고, 만약 일이 잘못되면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로 단호히 거부하고 몰려오는 적과 맞서 싸우다 13발의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다. 이때가 1637년(인조 15) 1월 7일 토산현 남산에서였다.

『연기지』에서는 죽을 당시 늠름한 기상과 생기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홍직이 순절한 사실은 황엽이 전하여 서몽양의 『문성지』에 기록되어 있으며, 『충청도읍지』 전의현 인물조, 『호서읍지』 전성지 인물조, 『연기지』 충신조, 『조선환여승람』 충신조 등에도 기록되어 있다. 홍직의 묘는 전의면 다방리에 있다.

[위치]

전의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약 1.5㎞ 떨어진 곳에 서정리 내서마을이 있다. 충신 홍직 정려는 내서마을 동쪽으로 향하여 뻗은 능선의 서향사면 낮은 야산 구릉에 있다.

[변천]

1713년(숙종 39) 숙종이 홍직의 충절을 치하하는 글을 내려 병조참의에 증직하고 명정을 내렸다.

이후 정려 건물은 1908년에 중건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4년 9월에 중수된 것이다.

[형태]

1908년에 중건한 홍직 정려는 정면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겹처마를 하고 있다. 화강석재를 가공한 8각 고주초석 위에 둥근 기둥을 올렸으며, 4면에는 홍살을 돌렸다.

정려 양 옆의 박공 밑에는 비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정려 주위에 보호시설은 없으나 잔디를 깔아 비교적 정갈하게 정비하였다.

[현황]

정려 정면 상단부에는 20여 년 전 제보자 홍두표(洪斗杓)가 만든 ‘忠臣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정려 내부에는 1713년(숙종 9) 홍직에게 증직하여 명정을 내린 일과 중건한 사실을 기록한 현판[忠臣 贈通政大夫兵曺參議 行通訓大夫文化縣令黃州鎭管兵馬節制都尉 洪稙之閭 肅宗 癸巳 三月日 命旌 今上 戊申 五月 日 重建, 180㎝×38㎝]이 있다.

명정현판 뒷면에도 음기가 되어 있다. 홍직의 충행을 기록한 것으로, 1974년 9월에 대표 홍재순(洪在舜)과 홍두표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파란색 주칠 위에 음각으로 새겨 하얀색 주칠을 하였다. 풍화에 주칠이 벗겨져 글자는 알아보기 어렵다.

충신 홍직 정려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2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홍직은 무인으로서 여러 전란에서 활약하다 순절한 것이 나라에서 인정되어 충신으로 명정을 받게 되었고, 이러한 사실은 여러 기록으로 남아 남양홍씨 가문의 선현으로 추앙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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