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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945
한자 忠臣柳智傑旌閭
분야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하봉길 120[하봉리 90-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96년연표보기 - 충신 유지걸 정려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67년 - 충신 유지걸 정려 이전
이전 시기/일시 2017년 - 충신 유지걸 정려 이전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8년 - 충신 유지걸 정려 중건
문화재 지정 일시 1997년 06월 05일연표보기 - 충신 유지걸 정려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17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14년 09월 30일연표보기 - 충신 유지걸 정려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48호 지정
문화재 해지 일시 2014년 09월 30일연표보기 - 충신 유지걸 정려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17호 지정 해지
현 소재지 충신 유지걸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하봉길 120[하봉리 90-3]지도보기
원소재지 충신 유지걸 정려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송원리 옛 금호서사 옆
성격 정려
양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진주류씨 문중
관리자 진주류씨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48호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하봉리에 있는 류지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개설]

충신 유지걸 정려진주류씨(晉州柳氏) 류지걸(柳智傑)[1602~1619]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796년(정조 20)에 명정을 받아 건립한 것이다. 류지걸은 조선 중기의 충신으로,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임진왜란 때 활약한 통제사 유형(柳珩)의 여섯째 아들이다.

1618년(광해군 10) 후금이 명나라의 요동 지역을 공격하여 오자 명나라는 조선에 요동 정벌군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조선에서는 강홍립(姜弘立)을 도원수, 평안도병마절도사 김경서(金景瑞)를 부원수로 하여 1만 3,0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게 하였다. 이때 류지걸은 18세의 어린 나이로 형 유효걸(柳孝傑)을 대신하여 종군하였다.

이듬해 봄에 명나라 군사들이 연속 패하고 우리 원정군도 심하(深河)에서 많은 희생을 당하자 도원수 강홍립은 광해군의 밀지에 따라 남은 군사를 이끌고 후금군에 항복하였다.

그러나 후금의 진중에서는 우리 장졸들의 진심을 의심하여 홍(紅)과 백(白) 두 가지 색의 기를 세우고 “홍기 아래 모이는 자는 용서하고 백기 아래 모이는 자는 처형하겠노라.”고 하였는데 류지걸은 후금군에 끝까지 굽히지 않고 적을 꾸짖다가 형틀 아래에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하봉저수지가 있는 황골마을에 진주류씨 문중에서 건립한 충렬사가 있다. 충신 유지걸 정려는 충렬사 오른쪽에 세워져 있다.

[변천]

류지걸의 충절이 인정되어 1796년(정조 20) 조봉대부(朝奉大夫) 호조좌랑에 증직되고 명정을 받았다.

정려는 원래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송원리 옛 금호서사 옆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1967년 11대 종손 유응호에 의하여 공주시 의당면 송학리로 이건되었다. 그후 1998년 12대 종손 유근무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그러다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으로 공주시 의당면 송학리가 세종특별자치시에 편입되고, 2017년에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하봉리 충렬사 옆으로 다시 이전되었다.

[형태]

정려는 맞배지붕에 초익공 계통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이다. 8각 고주초석 위에 원형의 기둥을 세웠으며, 겹처마에 양 옆으로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4면에 홍살을 돌렸으나 하단부는 회색 벽돌을 쌓아 막았다.

바닥에는 석재로 1단 기단을 놓았으며, 시멘트로 보수하였다. 정려 주변에는 보호시설을 하지 않고 개방하였다.

[현황]

정려 외부의 창방 위에는 충신 류지걸이 1796년에 명정을 받았음을 알려 주는 현판[忠臣 贈朝奉大夫 戶曺佐郞 柳智傑之閭, 24×159㎝]이 걸려 있다.

정려 내부에는 유협기(柳協基)가 찬하고 8세손 유징로(柳徵魯)가 서한 정려기[87×39㎝], 정려비[56×26㎝×141㎝]가 세워져 있다. 정려기는 심하게 훼손되어 알아보기가 어렵다.

정려 앞 오른쪽으로는 1998년 중건기를 담은 비석이 세워져 있고, 왼쪽으로는 1967년 이전기와 충신정려기가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충신 유지걸 정려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48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충청도 공주 지역에 세거하던 진주류씨는 무인 집안으로서 꾸준히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나름의 정치적 지위를 확보하는 동시에 공주 지역 사족 활동에도 활발하였다.

진주류씨 집안은 이와 같은 활동에 힘입어 지역 사림의 적극적 지지를 받아 정려를 건립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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