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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948
한자 烈女三陟陳氏旌閭
이칭/별칭 열녀 김정의 처 삼척진씨 정려
분야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등곡리 29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39년연표보기 - 열녀 삼척진씨 정려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28년 - 열녀 삼척진씨 정려 중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9년 - 열녀 삼척진씨 정려 보수
문화재 지정 일시 2014년 09월 30일연표보기 - 열녀 삼척진씨 정려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62호 지정
현 소재지 열녀 삼척진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등곡리 298 지도보기
원소재지 열녀 삼척진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등곡리 298
성격 정려
양식 맞배지붕 목조기와
정면 칸수 1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경주김씨 문중
관리자 경주김씨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62호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등곡리에 있는 김정의의 처 삼척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개설]

열녀 삼척진씨 정려는 학생 김정의(金貞義) 처 삼척진씨(三陟陳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열녀인 삼척진씨는 경주김씨 계림군파 17세손인 김정의와 혼인하였다. 두 사람이 약혼하자 곧 남편이 병이 들어 서둘러 혼례를 올렸다.

삼척진씨는 남편을 치료하기 위하여 침식을 잊고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하였으나 남편은 끝내 죽고 말았다. 남편이 죽은 후에도 여인으로서 언행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여 시댁과 마을 사람들 모두 칭송하였다.

삼척진씨는 친정어머니가 병들자 친정에 가서 친정어머니를 간호하였다. 그때 친정아버지가 삼척진씨를 개가(改嫁)[혼인한 여자가 남편과 사별하거나 이혼하여 다른 남자와 혼인함]시키려 하자 끝내 거절하고 시댁으로 돌아와 시부모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후 이튿날 17세의 나이에 자결하였다.

[위치]

부강면 소재지에서 591번 지방도로를 따라 신탄진 방면으로 약 2.6㎞를 가다가 등곡리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약 400m 가면 마을 입구 왼편 구릉지에 열녀 삼척진씨 정려가 있다.

[변천]

열녀 삼척진씨 정려 내 사적기문에 의하면 삼척진씨의 열행에 조정에서는 1839년(헌종 5) 흰 비단에 수놓은 옷과 함께 정려를 내렸다고 한다.

열녀 삼척진씨 정려가 있는 곳은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등곡리 조은마을이다. 지금의 정려는 1928년에 중건하고 1989년에 보수한 것이다.

[형태]

열녀 삼척진씨 정려는 돌계단을 따라 오르는 대지 위에 세워져 있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 건물이다. 8각 고주초석 위에 원형 기둥을 세웠으며, 사면은 홍살로 처리하였다.

열녀 삼척진씨 정려 주변은 돌기둥을 세운 철책으로 보호하였다.

[현황]

열녀 삼척진씨 정려 내부에는 열녀문 편액을 걸었다. 편액에는 ‘烈女 學生金貞義 妻 三陟陳氏之門 當宁四年庚子二月 命旌閭, 戊辰春重修’라 하여 1839년(헌종 5)에 명정을 받아 1928년에 중수하였음을 기록하였다. 명정현판 크기는 가로 172㎝, 세로 45㎝이다.

명정현판 아래에는 1839년에 이중연(李重延)이 짓고 장서오(張瑞五)가 쓴 사적기와 1989년에 번역한 한글판이 걸려 있다. 사적기 크기는 가로 172㎝, 세로 45㎝로 명정현판과 같다.

열녀 삼척진씨 정려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6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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