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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1005
한자 自畵像
영어공식명칭 Self portrait
이칭/별칭 길 위의 자화상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작품/미술과 공예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민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가 생년 시기/일시 1917년 11월 26일 - 장욱진 출생
작가 몰년 시기/일시 1990년 12월 27일 - 장욱진 사망
창작 시기/일시 1951년연표보기 - 「자화상」 제작
성격 서양화
양식 유화
작가 장욱진
재질 캔버스
소유자 유족
관리자 유족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출신 서양화가 장욱진의 대표작.

[개설]

「자화상」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출신 화가 장욱진(張旭鎭)[1917~1990]의 대표작으로, 6·25전쟁 시 고향으로 피란 와 있던 1951년에 그린 작품이다.

[형태]

크기는 세로 14.8㎝, 가로 10.8㎝로 매우 작다. 종이가 삭아서 건드리면 부서질 정도로 보존 상태가 심각하다.

하지만 발색만큼은 여전하여 아직도 처음의 높은 채도와 색조를 유지하고 있다.

[내용]

무르익은 벼의 황금빛 들판에 한번 크게 구부러진 빨간색의 논길이 있고, 하늘에는 네 마리의 새들이 날고 뭉게구름이 몇 점 둥실 떠다닌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한가로운 가을날의 시골 풍경이다. 그런데 그림의 앞 한복판 빨간 길 위에 머리는 단정히 가르마를 탄 채 콧수염을 기르고, 한 손에는 우산을 다른 한 손에는 19세기 서양식 모자를 들고 연미복을 날렵하게 입은 삐쩍 말라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신사가 정확한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미술에서 인체를 표현할 때 무게를 한쪽 발에 집중시키고 다른 쪽 발은 편안하게 놓는 구도]의 자세로 서 있다.

그리고 신사 뒤에 역시 삐쩍 마른 개 한 마리가 신사를 따른다.

제작 당시 전쟁의 참화 속에 각박한 현실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절박한 생활상보다는 황금빛으로 익어 가는 벼를 통하여 시골의 이상적인 풍경을 목가적으로 담아냈다.

[특징]

장욱진은 그림 「자화상」에서 ‘외롭지 않은 대자연 속의 완전 고독’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가 전란의 혼란과 무질서인 점을 감안하면 「자화상」은 온통 모순이다.

우선 전쟁의 와중에 풍요롭게 물들어 있는 논이 있을 리 만무하며, 더욱 기이한 것은 논 사이의 길로 영국 신사풍의 정장을 입은 채 걸어가는 작가의 존재이다.

장욱진의 부인은 ‘전쟁의 혼란 중에서도 화가 자신이 꿈꾸는 삶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하였다. 부인의 기억으로는 부부의 결혼식 날 실제로 그림 속 신사와 비슷한 정장을 입었다고 이야기하였다.

전쟁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목가풍의 배경에 서양식 예복을 입고 박쥐우산을 든 채 제 갈 길을 걸어가는 화자의 설정에서 우리는 그림의 낭만성을 넘어 강한 해학성마저 느낄 수 있다.

피폐하고 궁핍하던 전쟁 시기에 그려졌음에도 오히려 평화롭고 풍요롭기까지 한 작품 「자화상」은 파격적인 구도와 자유로운 표현을 통하여 동양철학이 깃든 향토적이고 서정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장욱진의 예술관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의의와 평가]

「자화상」장욱진의 대표작이자 「나룻배」(1951), 「연동풍경」(1955), 「황토길」(1989) 등과 함께 세종특별자치시에 높은 장소성을 띠고 있는 작품으로의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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