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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재의 금단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1313
이칭/별칭 「질재의 금단지」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장재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기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8년 12월 31일 - 『연기군지』 800~801면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7년 06월 20일 - 『금남면향토지』 940~942면 수록
관련 지명 괴화산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장재리 지도보기
성격 명당설화|지명설화
주요 등장 인물 백제 유민|유민의 종[하인]
모티프 유형 지명유래담|백제 유민의 몰락과정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장재리의 길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길재의 금단지」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장재리의 길재(질재)가 밤이면 빛이 나는데, 금괴가 묻혀있기 때문이라는 지명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8년 연기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연기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연기군지』에는 『연기실록』으로 출전이 표기되어 있다. 채록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내용]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이후 백제의 유민은 재산을 정리하여 웅진[공주]에서 금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유민들은 지금의 금남면 인근에서 산속으로 들어가 짐을 푼 후 데리고 온 종을 곰나루로 보내어 상황을 엿보게 하였다. 곰나루에 다녀온 종이 주인을 잡기 위해 현상금이 붙었다고 하자, 주인의 곁에 있던 종들이 주인을 보호하겠다고 나섰다. 종들은 인근으로 흩어져 집을 짓고 농지를 개간하면서 주인을 보호하였다. 이후에도 나당연합군이 몇 번이나 주인을 찾으려 하였지만, 주인은 종들과 함께 평범한 농부로 지내는 것처럼 보였기에 찾을 수 없었다. 정착하는 과정에서 주인이 가지고 온 금덩이를 잘라 사비성에 가서 팔아 쓰기도 하였기에 종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부자가 되었다. 이후 주인이 늙어 죽게 되자 주인을 모시던 종들은 주인의 금덩이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판단하였다. 종들은 금덩이를 주인의 무덤에 함께 묻어버리고 자신의 자식에게도 금덩어리의 존재에 대하여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금덩이를 묻은 후로 무덤이 있는 산은 밤이면 빛이 났다고 한다. 이를 따라 후에 산의 이름을 괴화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괴화산에는 금괴가 묻혀있다고 전해진다.

[모티프 분석]

주인을 지키는 종들의 충성심과 지명전설이 혼합되어 있다. 백제 문화권이었던 지역에서의 지배층 몰락 과정이 드러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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