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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바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1353
한자 三千-
영어공식명칭 Samcheon Bawi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진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8년 - 『연기실록』에 있던 내용을 『연기군지』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1년 - 『전동면지』 수록
관련 지명 운주산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 지도보기
성격 암석설화
주요 등장 인물 왜병|주민 3,000명|갓난아이
모티프 유형 외세침략|임진왜란|민간인 몰살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 운주산에서 삼천바위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개설]

「삼천바위」전동면 미곡리 운주산에 있는 바위에 대한 암석유래담이다. 바위 아래에는 동굴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당시 주민 3,000명이 동굴로 피신하였다가 발각되어 몰살당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채록/수집 상황]

『연기실록』에 실려 있던 내용을 1988년 연기군지편찬위원회가 발행한 『연기군지』에 수록하였다. 2011년 전동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에서 발행한 『전동면지』에도 수록되어 있다.

[내용]

전동면 미곡리에 있는 운주산의 산 중턱에는 큰 바위가 있었다. 바위 아래에는 크고 깊은 굴이 있어서 과거 천안군 목천[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과 수신이 통할 정도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왜병이 쳐들어오자 주민들은 운주산으로 숨어들었다. 그런데 마을을 수색하던 왜병들도 산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주민 3,000명은 어쩔 수 없이 운주산의 바위 아래 동굴로 피신해서 바위로 굴 입구를 막고 산신령이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왜병이 동굴 입구에 다다랐을 무렵 산모 한 명이 아이를 출산하였고, 아이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크게 울음소리를 내었다. 울음소리를 들은 왜병은 동굴에 주민들이 숨어 있음을 알아채고 굴의 입구를 막은 돌을 헐고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결국 아이 울음소리 때문에 주민들은 떼죽음을 당하였다고 한다. 이후 동굴의 바위를 삼천바위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모티프 분석]

「삼천바위」는 전쟁통에 아기울음 소리로 인하여 주민들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 설화가 전하여지는 곳은 동굴로, 동굴을 막고 있던 바위에 민간인의 억울한 죽음이 투영되어 암석설화로 남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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