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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교리 괴화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1413
한자 石橋里槐花山
영어공식명칭 Seokgyori Goehwasa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성배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4년 11월 03일 - 금남면 석교리 이장에게서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7년 - 『금남면향토지』 수록
관련 지명 괴화산 -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 지도보기
관련 지명 전월산 -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지도보기
성격 사건설화|산신제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아군|왜군|짐승들
모티프 유형 보은설화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에서 괴화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석교리 괴화산」은 옛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현 세종특별자치시 반곡동 일대]에서 전하여 내려오는 괴화산과 얽힌 보은설화이다.

아군과 왜군이 싸울 때 괴화산에 사는 짐승들이 밤에 몰래 내려와서 왜군들의 무기 끈을 모두 끊어 놓아 아군이 승리하도록 하였고, 그 후로 괴화산의 산짐승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산신제를 지내게 되었다는 산신제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7년 금남향토지발간위원회에서 발간한 『금남면향토지』에 「석교리 괴화산」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1994년 11월 3일 금남면 석교리 이장에게서 채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먼 옛날 왜놈[일본군]들이 괴화산에 진을 쳤다. 강 건너 전월산에서는 아군들이 진을 치고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

왜군들은 날이 밝으면 총공격을 하기 위하여 무기를 점검하고, 강 건너로 화살을 쏘면서 강을 건너는 작전을 세웠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난 왜군은 깜짝 놀랐다. 어제 저녁까지만 하여도 멀쩡하던 화살과 무기를 짐승들이 쪼아서 모두 못쓰게 된 것이었다. 이는 괴화산에 사는 짐승들이 밤에 몰래 내려와 벌인 일이었다.

무기가 없어진 왜군이 옴짝달싹 못하게 되자 아군은 화살을 쏘아 왜군을 물리쳤다. 왜군은 불과 몇 명만이 살아서 도망쳤다.

그 후 동네 사람들은 괴화산의 짐승들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음식을 차려놓고 제를 지내기 시작하였으며, 오늘날 산신제로 전해진다.

[모티프 분석]

「석교리 괴화산」의 주요 모티프는 ‘보은’이다. 보통 ‘보은’과 관련한 설화는 인간에게서 은혜를 입은 동물이 사람에게 보은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석교리 괴화산」은 거꾸로 짐승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짐승들을 위하여 제를 지내게 되었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가진다.

또한 「석교리 괴화산」은 이러한 제(祭)가 산신제로 이어졌다는 ‘산신제 유래담’이기도 하다. 마을에서 행하여지는 의식은 지역민의 공동체 의식을 통한 유대감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석교리 괴화산 산신제는 매년 음력 10월 1일 산제를 지내는데 밤새도록 제를 지내고 2일 새벽에 끝이 난다. 수정 안 한 검은 수퇘지를 날것 그대로 통째 놓고 삼색실과를 놓는 것이 다른 산신제와 다른 점이다.

산신제와 함께 파생된 이야기로는 대체로 부정을 타거나 벌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는 산신제의 신령함을 강조하는 이야기로 활용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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