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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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郡邑誌 |
영어공식명칭 | Cheongjuguneupj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해준 |
1899년 편찬된 충청도 청주군의 읍지.
1책의 채색 지도가 첨부된 필사본으로 표지에 ‘충청북도청주군읍지(忠淸北道淸州郡邑誌)’라고 적혀 있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하고 있다.
이밖에도 연대 미상의 『청주군읍지』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1899년에 전국 읍지 편찬계획의 일환으로 작성된 청주군 읍지이다.
1871년에 편찬된 『호서읍지(湖西邑誌)』 수록 읍지를 저본(底本)[개정, 번역 등을 하기 전 본디의 서류나 책]으로 작성한 듯하다. 1895년에 편찬된 『읍지』에는 이 내용이 실려 있지 않다.
『호서읍지(湖西邑誌)』에 비하면 성씨(姓氏), 고적(古蹟)[남아 있는 옛 건물이나 시설물 또는 옛 건물이나 시설물이 있던 터], 무과(武科), 음사(蔭仕)[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공덕에 의하여 맡은 벼슬], 생진(生進)[생원(生員)과 진사(進士)를 아우르는 말], 제영(題詠)[제목을 붙여 시를 읊거나 제목을 붙여 읊는 시가], 사례(事例)[어떤 일이 전에 실제로 일어난 예] 조가 누락되어 있다.
1책 13장(張)으로 이루어진 읍지이다. 가로 36.3㎝, 세로 26.6㎝ 크기의 채색지도이다.
19세기 말엽 청주군은 현재 행정구역상 충청북도 청주시와 청원군 오창읍·옥산면·오송읍·강내면·남이면·남일면·낭성면·미원면·북이면·내수읍, 괴산군 청천면, 천안시 수신면,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일부, 대전광역시 동구의 동북쪽 일대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읍치는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와 북문로 일원에 있었다.
건치연혁(建置沿革)[지역의 내력], 사계(四界), 진관(鎭管)[조선시대의 지방 군사 조직인 주진(主鎭), 거진(巨鎭), 제진(諸鎭) 체제를 이르는 말], 관원(官員), 풍속(風俗), 형승(形勝)[뛰어난 지세나 풍경], 방리(坊里)[여러 집이 모여 사는 마을], 호구(戶口)[호적상 집의 수효와 식구 수], 산천(山川), 단묘(壇廟)[제단과 사당], 제언(堤堰)[물의 흐름을 막은 둑과 물길을 벗어나서 흐르지 않도록 쌓은 제방], 창해(倉廨)[창고와 관아 건물], 장시(場市)[조선 시대에 보통 5일마다 열린 사설 시장], 도서(島嶼), 물산(物産), 불우(佛宇)[부처를 모신 집], 도로(道路), 성지(城池)[성과 성 주위에 파 놓은 못], 누정(樓亭), 교원(校院)[향교와 서원], 역원(驛院), 한전(旱田)[물을 대지 않거나 필요한 때만 물을 대어서 야채나 곡류를 심어 농사를 짓는 땅], 수전(水田)[물을 쉽게 댈 수 있는 무논], 정문(旌門)[충신, 효자, 열녀를 표창하기 위하여 해당 집 앞에 세운 붉은 문], 비갈(碑碣)[사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쇠붙이나 돌에 글자를 새겨 세우는 비와 갈을 아우르는 말], 인물(人物), 군액(軍額)[군대에서 쓸 곡식의 양], 진공(進貢)[공물], 환곡(還穀)[조선 시대에 사창(社倉)에 저장하였다가 백성들에게 봄에 꾸어 주고 가을에 이자를 붙여 거두던 곡식], 전세(田稅)[논밭에 부과되는 조세], 대동(大同)[여러 가지 공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납세제], 봉름(俸廩)[조선 시대에 벼슬아치에게 봉급으로 주던 쌀], 총묘(塚墓)[무덤] 순이다.
특기할 사항은 『호서읍지』에 비하여 성씨·고적·무과·음사·생진·제영·사례 조가 누락되었으나 역사가 오래된 고장인 만큼 많은 인물이 소개되고, 특히 비갈조에는 한명회(韓明澮)의 비(碑)를 비롯하여 수십 개의 비가 기록되었다.
1997년 충북향토사연구협의회에서 영인 발간한 『충청북도각군읍지(忠淸北道各郡邑誌)』는 통감부(統監府) 체신관서(遞信官署)의 양면 괘지에 필사하여 체신국도서관(遞信局 圖書館)에서 보관하여 왔다.
어떤 군은 해서(楷書)[또박또박 정자로 쓰는 한자 서체의 하나], 어떤 군은 행초서체(行草)[행서와 초서를 섞어서 쓴 한자 서체]로 작성하여 전체적으로 조잡하고 형식적인 면이 느껴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