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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188
한자 雙田里
영어공식명칭 Ssangjeo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전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심정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연기군 북면 쌍전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7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연기군 북면 쌍전리에서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쌍전리로 편입
변천 시기/일시 2012년 07월 01일 -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쌍전리에서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전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1.6㎢
가구수 114가구
인구 205명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쌍괴리’와 ‘전당리’가 병합되어 각 마을 명칭의 앞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쌍괴리는 마을에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어서 붙인 이름이고, 전당리는 마을의 산세가 수려하여 마치 중국에서 경치가 최고인 전당(錢唐)과 흡사해서 붙은 명칭이다. 쌍전리에는 전당골, 쌍괴, 전성말, 오땀말, 큰말 등 자연 마을이 있다.

전당골마을은 1400년경 남양홍씨, 강씨, 유씨가 정착해서 살면서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마치 중국의 전당과 같아 붙은 명칭이다.

쌍괴마을은 전당골 동남쪽에 있고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고려시대에 군기 창고가 위치하여 창고개, 창현이라고도 불리었다. 전주이씨가 오랫동안 살았고, 마을의 꼭대기에는 옹달샘이 있다.

[형성 및 변천]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두잉지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연기현, 고려시대에는 청주목, 조선 전기에는 전기현(全岐縣), 조선 후기에는 연기군(燕岐郡) 북이면(北二面) 지역이었다. 1914년에는 쌍괴리와 전당리를 병합하여 연기군 북면 쌍전리(雙錢里)에 속하였고, 1917년에는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쌍전리가 되었다. 2012년 7월에는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쌍전리로 변경되었다.

[자연환경]

쌍전리는 대부분 100m 이하의 구릉성 산지와 평지 지역이다. 마을은 북고남저 지형으로, 전형적인 배산임수 형태이다. 북서쪽에서 흘러내린 월하천은 남동을 지나 미호천으로 유입한다. 지대가 낮은 마을 남쪽의 하천 주변에는 쌍전들이 넓게 분포하며, 북부는 밭과 과수원이 넓게 나타난다.

[현황]

연서면 중부 동쪽에 있는 쌍전리의 면적은 1.6㎢이다. 인구는 2020년 8월 기준 114가구에 총 205명이다.

쌀은 쌍전들에서 많이 생산되며, 지대가 높은 곳에서는 밭농사와 과수 재배가 활발하다. 마을에는 고구마 캐기, 알밤 줍기 등 농산물 수확을 체험하고 구입할 수 있는 정수농장이 있다. 그 외에 농업과 관련된 공공시설로는 후계자 미곡처리장이 있고 공공기관으로는 세종특별자치시 농업기술센터와 세종특별자치시 농기계임대사업소 등이 있다.

쌍전리 뒤에 위치한 정좌산은 우리나라 7대 대첩 가운데 하나인 연기대첩이라는 역사적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고려 후기인 1291년(충렬왕 17) 5월에 원나라 반란군 합적단이 침입했을 때 고려와 원나라 연합군이 무찔러 나라를 어려움에서 구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10.07 현행화 인구는 2020년 8월 기준 114가구에 총 205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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