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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1252
한자 隱龍里-長丞祭
영어공식명칭 Religious Ritual for a Jangseung of Eunyongri Nonggol
이칭/별칭 은용리 농골 거리제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은용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민정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은용리 농골 장승제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은용리 마을 어귀지도보기
성격 동제|장승제
의례 시기/일시 음력 정월 열나흗날
신당/신체 선돌 2기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은용리 농골에서 음력 정월 열나흗날 장승에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은용리 농골에서는 마을의 안과태평을 위하여 해마다 음력 정월 열나흗날 밤 9시경에 거리제를 지낸다. 신앙대상물은 마을 어귀에 있는 선돌 2기이다. ‘할아버지돌’, ‘할머니돌’로 불린다.

[연원 및 변천]

마을의 전염병을 막기 위하여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시작하게 된 시점은 알 수 없다.

[신당/신체의 형태]

거리제를 모시는 장소는 본래 마을 어귀 사거리였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제사 장소가 동구 밖의 밭 가운데 솟은 작고 뾰족한 2기의 선돌 앞으로 바뀌었다. 마을 바깥에서 바라보았을 때 오른편의 돌이 ‘할아버지돌’, 왼편의 돌이 ‘할머니돌’이다. 마을에서는 이를 ‘장승’으로 인식하고 정성을 들여왔다.

[절차]

마을에서는 정초에 깨끗한 사람으로 제관을 선출한다. 대개 집안에 부정이 없고 학식이 있는 어른이 제관을 맡았다. 제관으로 뽑히면 정초부터 집 밖 출입을 삼가고 근신한다. 제관은 거리제를 모시기 전까지 일체의 부정을 가린다. 상갓집이나 산가(産家)와 같이 부정한 곳에는 왕래를 금하였다. 거리제를 앞두고 마을에 초상이 나면 부정하여 제삿날을 뒤로 미루었다. 어떤 해에는 길일을 정하지 못하여 이월 초하루까지 미뤄지기도 하였다.

제관은 정월 초사흗날부터 가가호호 다니면서 제비를 갹출하였다. 어느 집이고 가난한 형편이라서 쌀 한 됫박도 겨우 내놓았다. 성의껏 모은 쌀로 제물을 장만하였다.

거리제에 앞서 주민들은 제장을 깨끗이 청소하고 할아버지돌과 할머니돌에 흰 고깔을 씌워 놓았다. 고깔이 벗겨지지 않도록 금줄로 둘러놓았다. 또한 깨끗한 산에서 파 온 황토를 선돌 주변에 드문드문 펴놓았다. 제관 집 대문 앞에도 마찬가지로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놓았다.

음력 정월 열나흘 밤이 되면 제관 일행은 거리제를 지내러 제장으로 향한다. 먼저 할아버지돌 앞에 짚을 깔고 준비한 제물을 차린다. 거리제 제물로는 백설기 한 시루[서 되, 서 홉], 삼색실과, 나물 세 가지 등을 올린다.

제관은 유교식으로 정숙하게 제사를 모신다. 해마다 축문도 새로 쓴다. 축문(祝文)에는 할아버지돌을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할머니돌을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고 표현한다. 독축(祝文) 후에 제관은 집마다 소지(燒紙)를 올려준다. 이어서 할머니돌 앞에서도 똑같이 제물을 차리고 정성을 들인다. 제사 방식은 동일하다.

제관 일행은 할머니돌에 정성을 들인 후 간단히 음복한다. 집마다 소지를 올려야 하므로 거리제는 밤이 깊어서야 끝이 난다.

[현황]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은용리 농골마을 주민들에 의하여 전승되고 있다. 장승에 대한 신앙심과 전승에 대한 의지가 강한 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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