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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143
한자 鳥致院邑
영어공식명칭 Jochiwoneup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세종특별자치시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류주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충청남도 연기군 북면 조치원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17년 10월 01일연표보기 -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면 신설
변천 시기/일시 1931년 04월 01일연표보기 -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면에서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읍으로 승격
변천 시기/일시 1940년 07월 04일연표보기 -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읍 조치원리를 9개리로 분할
변천 시기/일시 1940년 07월 04일연표보기 -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의 4개리를 흡수
변천 시기/일시 2012년 07월 01일 -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읍에서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으로 개편
성격 법정읍
면적 13.56㎢
가구수 1만 9,826가구
인구 4만 4,258명

[정의]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하는 법정읍.

[명칭 유래]

『한국지명유래집』에 의하면 조치원읍 일대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경부선 조치원역이 들어서 개발되기 이전에는 비만 오면 큰 강을 연상하게 하고 물이 빠지면 군데군데 웅덩이가 생기는 지역이었다고 한다. 또 갈대와 억새가 무성하여 새가 많았기 때문에 ‘새들이 많은 냇가’라는 뜻에서 ‘새내’라 부르고, 한자로 ‘조천(鳥川)’ 또는 ‘조천천(鳥川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치원은 1770년 『동국문헌비고』 권72 시적고(市糴考) 향시조(鄕市條)에 의하면 조치원장이 4일 [鳥致院 四]에 열린다는 소개가 있고, 『일성록』 과 『승정원일기』 의 1800년 10월 24일 기사에 “鳥致院 酒店”이라는 기록이 확인된다. 또한 『1872년 지방지도』「청주목지도」에 서강외일면(西江外一面)을 보면 조치원이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지명임을 알 수 있다.

[형성 및 변천]

일제강점기의 지리적 특성 변화 가운데 1904년 조치원역 설치는 조치원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으로, ‘조치원’이라는 도시적 마을 발생의 제1 요인이다.

조치원조치원역 설치에 따라 급격한 근대적 도시 개발이 이루어졌다. 조치원역을 비롯한 경부선이 전면 개통된 것은 1905년 5월 25일이다. 조치원역원리 일대에 설치된 1904년을 전후하여 조치원역조천 사이에는 시가지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1921년 사설 철도회사인 조선중앙철도 주식회사에 의하여 조치원~청주 간 충북선이 개설되면서 발전 속도가 붙었다.

조치원역 설치 이후 1911년 충청남도 남면 연기리에 있던 연기군청이 당시 충청남도 북면 지역[현 조치원읍]으로 이전하였으며 1914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행정구역이 통폐합될 당시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 장대리(場垈里)와 평리(平里)를 병합하여 ‘조치원리’라 칭하고 북면(北面)에 편입시켰다.

1917년 지정면(指定面)으로서 조치원면의 설치는 조치원 역사상 처음으로 행정기능체[면사무소]를 갖게 되는 의미 있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조치원면사무소는 당시 조치원리에 두었다.

1931년 조치원읍 승격은 조치원이 본격적으로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기반을 둔 도시적 마을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 1939년 서면의 신안리·내창리·동리·번암리·죽내리 등 5개 리(里)의 조치원 편입은 시가지가 급격히 외적으로 팽창하는, 조치원에 공간적 기반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치원은 잘 발달한 철도 및 도로 교통, 풍부한 하천수, 비옥한 평야 및 밭농사와 과수농사에 적합한 구릉성 산지, 지방행정 기관 및 고등교육기관의 입지 등을 기반으로 연기군 시절 정치·경제·사회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이 후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로 편입될 당시 14개 법정리(원1·2리, 상1·2리, 평리, 교리, 정리, 명리, 남리, 침산1·2리, 신흥1·2·3·4·5·6·7리, 죽림1·2리, 번암1·2리, 신안1·2·3리, 봉산1·2리, 서창1·2리)로 구성되었다.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편입 이후 인구는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2014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감소추세는 2015년말까지 계속되다가, 2016년 정체기를 거쳐 2017년 이후 지금까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9년 4월 말 기준 남리는 남1·2리로, 침산1·2리는 침산1·2·3·4리로, 죽림1·2리는 죽림1·?2·3·4·5리로, 신안1·2·3리는 신안1·2·3·4리로 조정되었는데, 조치원읍이 변화된 이들 지역 중심으로 인구변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신안리의 인구 증가로 두드러진다.

2015년 12월 조치원읍 사무소가 북세종통합행정복지센터로 변경되었다. 총 407개 사무 중 책임읍 215개 위임사무(건축신고, 부동산 실거래 신고, 복지사무, 개인하수처리시설 등)가 이관되었으며, 광역·기초자치 단체 청사가 아님에도 여권발급이 된다.

[자연환경]

조치원은 전체적으로 왼쪽의 구릉성 산지와 오른쪽의 조천 간 사이의 평지로 형성되어 있어서 전형적이진 않지만 배산임수 마을 입지를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치원 자연환경의 첫 번째 특징은 조치원역 중심으로 동부 지역은 충청북도 청주 방향으로 평야이지만, 서부 지역 충청남도 공주 방면은 약간의 구릉을 이루고 있어서 시가지 확장이 동편의 평야에 조성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조천과 범람이다. 조치원 일대는 동쪽 경계부를 남북 방향으로 흐르는 조천이 여름철 홍수기만 되면 자연제방을 넘어 배후습지로 범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범람을 방지하기 위하여 인공제방을 축조하고 인공제방 왼쪽의 호소형 배후습지를 매립하여 도시 기반을 마련하였다.

[현황]

조치원읍의 면적은 13.56㎢이고, 2020년 8월 기준으로 총 19,826가구에 주민은 총 44,258명이다. 그러나 통근·통학을 위해 주민등록을 이전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많아 실제 거주자는 5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09.29 현행화 2020년 8월 기준으로 총 19,826가구에 주민은 총 44,258명이다. 그러나 통근·통학을 위해 주민등록을 이전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많아 실제 거주자는 5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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