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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406
한자 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
영어공식명칭 Stele of Amitabha with Inscription of "Gyeyu Year", Offered by Jeon
이칭/별칭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
분야 역사/전통 시대,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명암동 87]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이용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673년연표보기 -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제작
출토|발굴 시기/일시 1960년 9월 -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발견
문화재 지정 일시 1962년 12월 20일연표보기 -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국보 제106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0년 06월 28일연표보기 -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에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으로 문화재명 개칭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국보 재지정
현 소장처 국립청주박물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명암동 87]
출토|발견지 비암사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비암사길 137[다방리 4]지도보기
성격 불상
재질
크기(높이) 43㎝[높이]|26.7㎝[너비]|17㎝[옆면너비]
소유자 국유
관리자 국립청주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국보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 비암사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아미타불비상.

[개설]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은 1960년에 세종 지역인 전의면 비암사(碑巖寺)에서 다른 2점의 불비상(佛碑像)과 함께 발견되었다. 명문에 의하면 계유년(673)에 전씨 일가의 발원에 의하여 조성되었다. 현재는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소장 및 관리하고 있다.

[형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은 긴 사각 돌의 각 면에 각각 불상과 글씨를 조각한 비상(碑像) 형태이다. 정면은 아래쪽의 너비가 약간 넓은 가운데 가장자리를 따라 감실(龕室)[궁전 안의 옥좌 위나 법당의 불좌 위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 형태로 테두리를 새겼다. 테두리 안쪽을 한 단 낮게 하여 위쪽에 이중으로 주형광배(舟形光背)를 조각하였다. 광배 좌우로는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의 주악천(奏樂天)이 자리하고 있으며, 가운데는 아미타불과 협시로 구성된 삼존상을 비롯하여 아미타불 권속들을 조각하였다. 아미타불은 설법인을 결한 채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하였고, 협시보살과 인왕(仁王)·나한(羅漢)들이 좌우에 조각되어 있다.

본존인 아미타불이 앉아 있는 대좌는 연꽃이 아래쪽으로 향한 사각대좌이고, 얼굴 부분은 마멸되었지만 머리 위에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솟아 있어 전체적으로 갸름한 형태이다. 반면 신체는 건장하고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설법인을 결하고 있는 두 손은 비교적 크게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래의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通肩)의 법의를 입었는데 옷자락이 가슴 부근에서 여러 겹으로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무릎 아래에서 주름을 이루어서 대좌를 거의 덮고 있다. 옷주름이 두꺼워 신체의 굴곡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머리의 광배는 원형이다. 세줄의 원 안에 연꽃을 배치하고, 가장자리에는 꽃무늬와 함께 연주문(連珠文)을 둘렀다.

아미타불의 좌우에 위치한 협시보살상은 본존 쪽으로 몸을 약간 튼 자세로 대좌 위에 서 있다. 딱딱한 정면 직립의 자세에서는 벗어나 있다. 보살상 역시 얼굴 부분이 마멸되었다. 머리에는 연꽃을 돌린 간단한 원형 광배를 두르고 있으며,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목에는 긴 영락(瓔珞)[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 장식을 두르고 있고, 몸에 걸친 천의는 무릎 부근에서 X자형으로 교차되었다. 한 손을 들어 올려 가슴 근처에서 보주를 들고 있으며, 다른 한 손은 내려 정병(淨甁)[목이 긴 형태의 물병]을 잡고 있다. 협시보살상 아래에는 걷고 있는 형태의 사자 두 마리를 조각하였다.

보살상 좌우에 있는 인왕상 역시 본존인 아미타불을 향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왼쪽의 인왕상은 왼손에 긴 창을 들었다. 인왕상은 모두 갑옷을 입은 모습이다. 허리에는 X자형으로 교차되는 영락 장식도 확인된다. 나한상은 모두 4구이며, 상체 일부만 드러내고 있어 보살상이나 인왕상보다 뒤쪽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미타삼존상을 비롯하여 조각된 상들 위쪽으로는 이중의 거대한 주형 광배를 조각했다. 화염(火焰) 형태의 연주문으로 광배를 둘로 나누었다. 안쪽에는 연화좌에 결가부좌한 화불(化佛)[부처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 형상] 5구를 조각하고, 아미타불의 머리 광배 바로 위쪽에 커다랗게 보주를 새겼다. 바깥쪽으로 좌우에 각각 4구의 비천(飛天)을 조각하고, 중앙에 머리 위로 궁전을 받들고 있는 좌상 1구를 배치하였다. 불비상의 가장 꼭대기에는 좌우로 천궁(天宮)을 받들고 날아오르는 천인을 조각했다.

불비상의 옆면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의 천인과 용을 새겼다. 정면의 아미타 세계를 장엄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들의 모습은 동작이 사실적으로 자연스럽게 표현되었고, 용은 비록 상체만 남아 있지만 용솟음치는 세부 동작이 충실하게 묘사되었다.

불비상의 뒷면은 4단으로 구획하고 단마다 연화좌에 결가부좌한 불상을 5구씩 병렬로 조각하였다. 불상 사이에는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을 발원한 이들의 이름과 관직을 새겨 넣었다.

[특징]

뒷면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불비상은 계유년에 전씨 일가의 발원에 의하여 조성되었으며, 계유년은 삼국통일 직후인 673년(문무왕 13)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비상이 조성된 곳이 옛 백제 지역이며, 발원자인 전씨의 관등 중에 달솔(達率)과 같은 백제의 관등명이 보이고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보아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 유민들에 의하여 조성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조각이 정교하면서도 장엄하고, 세부 양식에서도 옛 형식이 남아 있는 점이 계유명삼존천불비상[국보 제108호]과 유사하다.

[의의와 평가]

정면 하단에서 옆면·뒷면에 이르기까지 비상을 조성한 연대를 비롯하여 발원자의 이름과 관직 등 명문이 새겨져 있어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불상 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06호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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