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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476
한자 葳汀集
영어공식명칭 Wijeongjip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세종로 1-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완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조선 후기 - 진시책이 저술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6년 - 진병갑이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
소장처 국립민속박물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세종로 1-1] 국립민속박물관
성격 문집
저자 진시책
권책 2책
행자 10항 자수부정
규격 의: 세로 30.5㎝ 가로 20㎝|예: 세로 29.3㎝ 가로 19.5㎝

[정의]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유학자 진시책의 문집.

[개설]

『위정집』진시책(陳時策)[1831~1906]의 필사본 문집이다. 인(仁), 의(義), 예(禮), 지(智) 등 4책으로 발간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의와 예만 남아 전한다.

『위정집』 중 중요한 시문을 뽑아서 다시 엮은 『위정집약초』도 전한다. 두 종류의 책 모두 진시책의 후손 진병갑이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한 자료이다.

[저자]

진시책은 자(字)가 선약(善若)이고 호(號)는 위정(葳汀)이다. 1831년(순조 31) 7월 9일 공주군 명탄면 반곡리[현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반곡리]에서 진경태(陳炅泰)와 숙부인(淑夫人) 오씨(吳氏) 사이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명은 경출(景出)이다. 달덩이처럼 큰 별이 품속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하여 붙여졌다. 나중에 큰아버지 진경익이 후사가 없자 진경익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간행 경위는 『위정집』인(仁), 『위정집』의(義), 『위정집』예(禮), 『위정집』지(智) 4권 중 『위정집』인(仁)와 『위정집』예(禮)밖에 남아 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형태/서지]

선장(線裝)[인쇄된 면이 밖으로 나오도록 책장의 가운데를 접고 책의 등 부분을 끈으로 튼튼하게 묶는 책 장정(裝幀) 방법]으로, 전체 크기가 의는 세로 30.5㎝와 가로 20㎝이다. 예는 세로 29.3㎝, 가로 19.5㎝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으로 계선[界線][경계나 한계를 나타내는 선]이 없다. 항자수는 10항 자수부정이다.

[구성/내용]

『위정집』의(義)는 진시책이 달성서씨 집안의 서상우(徐相雨)·서상면(徐相冕)·서병염(徐丙炎)과 박효헌(朴孝憲), 박정양(朴定陽), 민치상(閔致庠), 임정현(任正鉉), 송병직(宋秉稷) 등에게 보낸 간찰(簡札)[안부, 소식, 용무 등을 적어 보내는 글]이 기록되어 있다.

『위정집』에는 단자(單子), 통문(通文), 국운을 예언한 배국록(排局錄)의 내용, 기문(記文), 상량문(上樑文), 제문(祭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위정집약초』에는 시, 간찰, 단자, 상량문, 진시책의 행장, 만사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일부 내용은 『위정집』의(義), 『위정집』예(禮)와 중복되어 나타난다.

[의의와 평가]

진시책의 사승관계는 드러나지 않으나 고종이 처사(處士)라 부른 인물의 문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는 문집이다. 또한 간찰을 통하여 교우관계를 파악할 수 있고, 배국록의 내용을 통하여 나라를 생각하는 충정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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