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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현 토성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507
한자 燕城縣土姓
영어공식명칭 Yeongi Hyeon Toseong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임선빈

[정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충청도 연기현에 토착하고 있던 씨족 집단의 성씨.

[개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조선 전기 연기현의 토성(土姓)[지방에 토착하고 있던 재지 씨족집단의 성씨에 대한 총칭]으로 위(魏)·하(河)·전(全)·경(耿)·장(萇)씨, 내성(來姓)[토박이 성씨가 아닌 다른 고장에서 들어온 성씨]으로 서울에서 온 왕(王)씨, 속성(續姓)[이전의 문서에 빠진 것을 뒤에 다시 적어 넣은 성]으로 김(金)·강(康)씨가 기록되어 있다.

[연원]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연기현 토성(土姓)의 수위에 기록되어 있는 연기위씨는 2019년 현재 연기(燕岐)에서 내력을 전혀 밝힐 수 없는 성씨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서 위씨는 함길도 함흥부 정평도호부 성씨조의 입성(入姓)[48성]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어 있으며 연기(燕岐)에서 왔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위의 48성이 지금은 모두 없다’고 하여 연기(燕岐)로부터 옮겨온 위씨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가 편찬될 당시에는 이미 정평도호부에 남아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연기위씨는 함길도 안변도호부 용진현의 망입성(亡入姓)[한때 이주(移住)하여 살았으나 없어진 성씨, 모두 25성]에도 보인다. 망입성(亡入姓)이라는 점에서 연기(燕岐)에서 용진현으로 이거(移居)한 위씨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편찬 당시에는 이미 사라진 뒤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연기현의 토성조 수위에 기록되어 있는 위씨는 일찍이 사민(徙民)[조선 세종대부터 성종 대에 걸쳐 영토확장을 위해 평안도·함경도 지역에 정책적으로 이주시킨 사람을 일컫는 말] 대상이었다. 그러나 연유는 확인되지 않는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토성 조의 수위에 기록되어 있던 위씨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성씨 조에서는 전(全)·경(耿)·장(萇)·하(河)·위(魏)로 5성 가운데 말단에 위치한다. 이렇게 사민(徙民)대상이 된 연기(燕岐)의 토성(土姓) 위씨는 점차 고을에서의 위세가 약화하다가 연기(燕岐) 지역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으로 여겨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인물 조에 ‘신증(新增)’으로 김준손(金俊孫)이 등재되어 있는데 김준손은 과거에 오르고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참여하여 연성군(燕城君)에 봉하여졌으며 벼슬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고 한다. 김준손은 연기김씨[연성김씨(燕城金氏)라고도 함]의 시조(始祖)인데 원래 연기(燕岐)의 토성(土姓)은 아니었다. 연기현의 속성(續姓) 가운데 김씨가 있어서 관련이 있을듯 하지만 확인되지는 않는다.

족보를 통해서 확인되는 바로는 연기김씨의 시조(始祖)인 김준손은 신라 경순왕의 제4자인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후예이며 김덕의(金德義)의 아들이라고 한다. 문과방목(文科榜目)[조선시대 문과 급제자의 명부]에 의하면 김준손의 자는 자언(子彦), 호는 주헌(酒軒), 본관(本貫)은 연기(燕岐)이며, 거주지는 미상이다. 김준손은 1468년 사마시에 급제하고 1486년(성종 17)에 훈도(訓導)로서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506년 9월 중종반정에 공(功)을 세워 정국공신 4등에 책록(策錄)[포상하여 기록함]되고 연성군(燕城君)[燕城(연성)은 燕岐(연기)의 별호임]에 봉하여졌으므로 후손들이 연기(燕岐)를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연기현 인물조에 김준손이 유일하게 올라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 연기현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연기김씨 인물로는 1591년(선조 24)에 식년문과에 급제한 김효간(金孝幹)과 1651년(효종 2)에 식년문과에 급제한 김정(金珽) 등이 있다. 문과방목(文科榜目)에 의하면 김효간은 본관(本貫)과 거주지가 미상으로 되어 있으나 김정의 경우에는 거주지는 미상이지만 본관(本貫)은 연기(燕岐)이고 아버지는 김충간(金忠幹)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 지리지에도 연기현의 성씨는 전(全)·경(耿)·장(萇)·하(河)·위(魏)씨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장씨가 『여지도서』까지는 조선 전기와 다름없이 ‘萇(장)’씨로 기록되어 있으나 『충청도읍지』, 『연기읍지』, 『호서읍지』 등에는 ‘蔣(장)’씨로 바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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