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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526
한자 密陽朴氏
이칭/별칭 밀성박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윤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513년(중종 8) - 박명 출생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564년(명종 19) - 박승조 출생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626년(인조 4) - 박치신의 부인 청주한씨 출생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707년(숙종 33) - 박동온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640년(인조 18) - 박승조 사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689년(숙종 15) - 박치신의 부인 청주한씨 사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772년(영조 48) - 박동온 사망
입향 시기/일시 1400년대 - 박건원 입향
입향 시기/일시 1500년대 전반 - 박명 입향
입향 시기/일시 1600년대 전후연표보기 - 박승조 입향
입향 시기/일시 1600년대 초반 - 박자동 입향
입향 시기/일시 1600년대 중반 - 박치신의 부인 청주한씨 입향
입향 시기/일시 1700년대연표보기 - 박동온 입향
분관|분종 시기/일시 1500년대 후반 추정 - 박지오 지오공파
분관|분종 시기/일시 1600년대 초반 - 박승조 연안공파
본관 밀양박씨 본관 - 경상남도 밀양시
입향지 밀양박씨 입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황용리 지도보기|연서면 봉암리지도보기|소정면 대곡리지도보기|전의면 노곡리지도보기|부강면 갈산리지도보기|장군면 평기리지도보기|금남면 부용리지도보기
세거|집성지 밀양박씨 세거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봉암리 지도보기|소정면 대곡리지도보기|전의면 노곡리지도보기|부강면 갈산리지도보기|장군면 평기리지도보기|금남면 부용리지도보기|조치원읍지도보기 일원
묘소|세장지 밀양박씨 오충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미꾸지길 7-4[예양리 20-4]지도보기
성씨 시조 박언침
입향 시조 박언침|박현|박명|박승조|박자동|박지오|박치신 부인 청주한씨|박동온|박건원

[정의]

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박건원, 박명, 박승조, 박자동, 박동온, 박치신 부인 청주한씨, 박지오 등을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밀양박씨는 한국의 토착 성씨로,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원조로 하고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한다.

박언침은 신라 경명왕의 맏아들로, 밀성대군(密城大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밀양으로 삼았다. 이후 밀양박씨는 10여 개의 본관과 크게 12파로 나뉘고 또 여러 소파로 분파되어 세계(世系)[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계통]를 이어오고 있다.

여러 파 중에서 규정공파(糾正公派)가 가장 번성하다.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의 밀양박씨 대부분이 규정공파 후손들이다.

[입향 경위]

금남면 황용리 밀양박씨는 통정대부를 지낸 1400년대 인물 박건원(朴乾元)을 입향조로 삼는다. 정확한 입향 사유는 알 수 없다.

연서면 봉암리 입향조는 박명(朴蓂)[1513~?]으로, 해백공파(海伯公派) 파조인 박소영(朴召榮)[1465~1518]의 아들이다. 당시 고양군 원서면 주교리에 살다가 봉암리에 정착, 호군공파(護軍公派) 일가를 형성하였다.

소정면 대곡리 밀양박씨 입향조는 박승조(朴承祖)[1564~1640]이다. 박승조는 안산군수, 양양부사를 거쳐 연안도호부사를 지냈다. 광해군 때 혼란한 정국을 피하기 위하여 어머니 창원황씨의 묘가 있는 대곡리 대사동으로 낙향하여 은거, 박승조를 파조로 하는 연안공파(延安公派)를 이루었다.

전의면 노곡리 밀양박씨는 박자동(朴自同)을 입향조로 삼고 있다. 박자동은 소정면 대곡리 입향조 박승조의 여섯째 아들로, 1600년대 초반 상노곡에 살던 부인 남원양씨 집안의 세거지로 분가하였다 한다.

부강면 갈산리에는 밀양박씨 청재공파(淸齋公派) 후손들이 살고 있다. 조선시대 청재 박심문(朴審問)[1408~1456]의 손자 박식(朴栻)이 당시 함창군 이안면에 살다가 문의현으로 입향하자 박식의 둘째 아들 박정영(朴廷榮)이 문의로 옮겨 왔다. 한편 박정영은 동생 박의영(朴義榮)이 연산군 때 문의에 유배되어 함께 낙향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이후 박정영의 아들 박지오(朴知五)가 갈산리에 정착하여 부강면 부강리금남면 부용리 일대에 지오공파(知五公派)를 형성하였다.

장군면 평기리 밀양박씨의 세거는 박치신(朴致新)[1624~1649]의 부인 청주한씨[1626~1689]가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청주한씨는 경기도 과천에 살았으나 남편이 일찍 죽자 아들을 데리고 평기리의 벌터로 옮겨 왔다. 평기리에 살던 한산이씨 이덕사(李德泗)의 부인 밀양박씨와의 인연으로 입향한 것으로 보인다.

금남면 부용리 입향조는 박동온(朴東蘊)[1707~1772]이다. 박동온은 선대가 살던 당시 청원군 강서면을 떠나 부용리에 세거하여 규정공파 집성촌을 이루었다.

[현황]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의 성』에는 밀양박씨부강면 갈산리에 48가구, 금남면 부용리에 23가구가 거주하는 동족마을로 기록되어 있다.

1988년 연기군밀양박씨는 동면 갈산리에 35가구, 서면 봉암리에 50가구, 금남면 부용리에 19가구, 전의면 노곡리에 47가구 등으로 확인되는 한편 조치원읍 일원에 고르게 분포되어 거주하였다.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연기군밀양박씨는 1985년 1,202가구 5,251명이며, 2000년에 1,395가구 4,576명이었다. 2015년 세종특별자치시의 밀양박씨는 11만 593명이다.

[관련 유적]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다가 전사한 밀양박씨 박천붕(朴天鵬)[1545~1592]과 병자호란 때 죽산산성에서 순절한 박천붕의 네 아들 박원겸(朴元謙)[1582~1637]·박인겸(朴仁謙)[1584~1637]·박예겸(朴禮謙)[1586~1637]·박의겸(朴義謙)[1591~1637]의 충정을 기리는 밀양박씨 오충 정려가 있다. 밀양박씨 오충 정려연동면 예양리에 위치하며,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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