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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586
한자 集姓村
영어공식명칭 Same Family Name Village
이칭/별칭 동족 마을,자작일촌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이해준

[정의]

세종 지역에서 같은 성씨가 오랜 기간 한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는 마을.

[개설]

집성촌은 혈연관계가 있는 동성 집단이 이룬 마을로서 하나의 성씨가 특정 마을의 주도권을 가지고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마을이다.

집성촌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형성되어 500~600년의 전통을 지닌 마을들과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에 이거 정착하여 300~400년의 전통을 지닌 마을들로 이루어져 있다.

[형성]

일반적인 집성촌들의 형성 계기와 유사하게 세종특별자치시 집성촌의 형성도 가장 빠른 시기인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 이루어졌다.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의 정신으로 은거(隱居)[세상을 피하여 숨어서 삶]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14세기 입향 성씨들로는 전의면 관정리 강릉김씨 송오공파, 남면 양화리[현 연기면 세종리] 부안임씨 전서공파, 전동면 미곡리 안동김씨 전서공파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사화기 정치적으로 은거(隱居)와 낙향, 임진왜란·병자호란 등 환란으로 이거(移居)[본래 살던 집에서 다른 집으로 거처를 옮김] 정착하는 경우도 많았다. 일부 성씨 중에는 나라에서 하사한 토지를 관리하기 위하여 정착한 경우도 있고, 경관이 수려한 곳에 은거(隱居)하기 위하여 낙향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조선 후기의 가장 일반적인 입향과 정착 과정의 하나로 주목되는 것은 처가와의 인연으로 정착하는 경우이다.

[대표적인 집성촌]

세종특별자치시의 대표적인 집성촌으로는 금남면 달전리 창녕성씨 회곡공파, 금남면 도암리 화순최씨 사평공파, 연동면 명학리 장수황씨 호안공파, 전의면 양곡리 안동김씨 전서공파, 조치원읍 봉산리 강화최씨, 장군면 전주이씨 덕천군파, 연서면 남양홍씨 남양군파, 연기면 세종리 부안임씨 전서공파, 연동면 노송리 경주김씨 상촌공파 집성촌 등이 있다.

[입향조와 저명인물]

세종특별자치시의 저명 집성촌 입향조 중에서 전의면 양곡리 안동김씨 전서공파는 파조인 김성목의 아들 김휴가 입향조이다. 연기면 세종리 부안임씨는 전서공 임난수가 은거(隱居)한 곳이고, 금남면 달전리 창녕성씨 회곡공파 입향조는 인재공 성희이다. 장군면 전주이씨 덕천군파는 정종의 열 번째 자식인 덕천군 이후생의 후손으로 공주에 전장(田莊)을 가지고 있었던 인연으로 후손들이 정착하였다. 연동면 명학리 장수황씨 호안공파의 입향조는 황첩이고 조치원읍 봉산리 강화최씨 입향조는 최완이다. 최완은 조치원읍 봉산리에 입향하여 8대에 걸쳐 15명의 효자와 열부를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변천]

1930년도 일제의 조사 결과인 『조선의 성(姓)』에는 전국에 1만 5,000여 개의 동족 마을이 확인되었는데 세종특별자치시에는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양화리 부안임씨 등 동족 마을 30여 개가 조사되었다.

집성촌은 근대화 과정과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 도시의 인구 흡인력 증대 추세 등으로 인하여 점차 와해되어 가고 있으나 지금도 세종특별자치시에는 집성촌의 형태와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많다.

[의의와 평가]

집성촌에는 문중의 기반을 확대하기 위하여 선산과 묘소를 마련하고 재실(齋室)을 건립하고 족계를 조직·운영한다. 또한 문중의 저명 인물을 제향(祭享)하는 서원과 사우(祀宇)를 건립하여 사회적 활동을 벌이기도 하고, 문집을 발간하거나 충효열 정려·신도비·유허비 등을 건립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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