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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688
한자 朴天鵬
영어공식명칭 Bak Choenbung
이칭/별칭 익호,규정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강경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4년(명종 9)연표보기 - 박천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71년(선조 4) - 무과장원급제
활동 시기/일시 1587년(선조 20) - 두옥동으로 낙향
몰년 시기/일시 1592년(선조 25)연표보기 - 박천붕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47년(영조 23) - 충근호성공신에 추증됨
추모 시기/일시 1747년(영조 23) - 박천붕의 네 아들이 선무원종공신에 추증됨
추모 시기/일시 1747년(영조 23) - 네 아들과 함께 명정을 받음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0년 - 밀양박씨 오충 정려 재건립
출생지 박천붕 출생지 - 충청도 연기군 북이면 신리 두옥동
거주|이주지 박천붕 낙향지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밀양박씨 오충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예양리 21 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본관 밀양
대표 관직 훈련원참군|충근호성공신

[정의]

조선 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무신.

[개설]

박천붕(朴天鵬)[1545~1592]은 본관(本貫)이 밀양이다. 자는 익호(翼乎), 호는 규정(樛亭)이다. 1554년(명종 9) 충청도 연기군 북이면 신리 두옥동[현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에서 태어났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인 조헌의 종사관이 되어 8월 청주전투에서 선봉장으로 적진에 뛰어들었다가 순국(殉國)[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하였다.

[가계]

박천붕의 7대조인 박침(朴忱)은 ‘두문동 72현’ 가운데 한 명이었고, 6대조인 박강생(朴剛生)은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조부인 박승수(朴承燧)는 임실현감과 병조참지 등을 역임하였다.

박천붕의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박령(朴笭)이고,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이다. 배위(配位)[남편과 아내가 모두 죽었을 때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는 익성공 황희(黃喜)의 후손인 황달효(黃達孝)의 딸로, 슬하에 박원겸[1582~1637]·박인겸[1584~1637]·박예겸[1586~1637]·박의겸[1591~1637] 네 아들을 두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네 아들은 “남쪽 왜적이나 북쪽 오랑캐가 비록 종자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침범한 원수임은 매한가지니 부친의 원수를 갚고 나라의 수치를 씻는데 왜적, 오랑캐를 가릴 것 있느냐?”라고 말하고는 당시 충청병사 이의배의 막료(幕僚)로 들어가 활약하다가 1637년 죽산산성 전투에서 모두 순절(殉節)[충절(忠節)이나 정절(貞節)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하였다.

그 후 박천붕과 함께 병자호란에 순절한 네 아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오충 정려가 있다.

[활동 사항]

박천붕은 1562년 9세가 되는 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4년 뒤인 13세 되는 해에는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중봉(重峯) 조헌(趙憲)[1544~1592]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1571년(선조 4)에는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훈련원참군(訓練院參軍)이 되었다.

1587년(선조 20) 스승 조헌이 선조의 노여움을 사서 옥천으로 낙향하자 박천붕 자신도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두옥동으로 내려와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박천붕의 39세 되던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 조헌의 종사관이 되어 8월 청주의 상당산성(上黨山城)을 탈환하기 위한 전투에서 선봉장으로 적진에 뛰어들었다가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747년(영조 23)에 박천붕은 충근호성공신(忠謹扈聖功臣)에 추증(追贈)[종2품 이상 벼슬아치의 죽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게 벼슬을 주던 일]되었고, 네 아들은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추증되었다.

명정(銘旌)[충·효·열을 행한 사람에게 나라에서 주는 최고의 포상]을 받아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월하리에 정려(旌閭)[충신, 효자, 열녀 등을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가 건립되어 있다.

그후 1920년에는 비(碑)와 정려가 파손되어 두옥동의 정려를 후손들이 모여 사는 연동면 예양리로 옮기게 되었다.

밀양박씨 오충 정려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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