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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958
한자 老松公所
이칭/별칭 천주교노송공소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웅골길 27-3[노송리 136-1]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오남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54년연표보기 - 노송공소 설립
이전 시기/일시 1971년 - 노송공소 재건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3년 - 노송공소 강당 건립
최초 설립지 노송공소 -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노송리 산 19
주소 변경 이력 노송공소 -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노송리 136-1
주소 변경 이력 노송공소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웅골길 27-3[노송리 136-1]
현 소재지 노송공소 -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웅골길 27-3[노송리 136-1]지도보기
성격 천주교 공소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공주지구 조치원성당 소속 공소.

[개설]

공소는 천주교에서 일반적으로 본당보다 작은 교회 단위를 의미하지만 간혹 공소 신자들의 모임 장소인 강당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연기 지역에서 천주교가 가장 먼저 전래된 곳은 동면 노송리의 노리미 마을이었다.

1866년에 있은 교난[병인박해]에 강의관이라는 사람이 난을 피하여 노송리의 이웃 마을인 청원군 강내면 사곡리[절곡]에 숨어 지내며 전교(傳敎)[종교를 널리 전도함]를 시작하였다.

그즈음 노리미 마을에 살던 김동명과 배영호는 당시의 지식인으로서 실학에 이어 천주교에 관심이 많았다. 김동명과 배영호에게 천주교의 교리를 익혀 주고 천주교 서적을 빌려 준 사람이 사곡리의 강의관이었다.

이후 김동명은 공주로 신부를 찾아가 신앙생활을 시작하였고, 배영호는 고향 노송리에서 공소 회장직을 맡아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노리미 마을을 중심으로 시작된 신앙생활이 꾸준히 이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설립 목적]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천주교 신자들의 종교 활동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1887년 노송리에 천주교가 전래하여 김동면 레오 자택에서 공소 예절을 시작하면서 1907년에 공소가 만들어졌다.

공소는 1911년 옥천 본당 소속이었다가 1914년에 비룡 본당, 1919년에 대전 성당 소속으로 바뀌었다. 1955년부터는 조치원본당에 소속되어 있다.

1963년 공소 강당을 건립하였다. 이때 신도는 약 80명이었다. 당시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노송리 산 19에 위치하였으며, 총 30평에 건물은 15평으로 개인 소유였다.

1971년에 노송공소로 재건축을 진행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당시 신자수는 90명, 건평은 30평이었다.

초대회장은 배영호 안드리아[1887~1911년 재임], 2대 회장은 김덕환 방지거[1911~1950년 재임], 3대 회장은 배철환 요아킹[1950~1978년 재임], 4대 회장은 김기욱 라파엘[1978~1983년 재임], 5대 회장은 배정환 알렉스[1983~1991년 재임], 6대 회장은 김창호 아오스팅[1991~2019년 재임]이다.

2019년 8월에 7대 회장으로 배정수 베드로가 임명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주일 오전 8시에 미사(missa)[가톨릭에서 예수의 최후 만찬을 기념하여 행하는 제사 의식]가 진행된다.

『노송공소 100년사』라는 공소 역사를 집대성한 책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현황]

공소 단체로 사도의 모후, 치명자의 모후, 파티마의 성모 등 레지오(Legio)[레지오 마리에를 줄인 말로, 로마 군대 조직을 본떠 성모 마리아의 군단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가톨릭교회의 평신도 조직]가 운영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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